"쉽게 복제할 수 없는 보물이자 장엄한 정신적·문화적 유산"
1971년 '애거사 크리스티 서한'과 유사한 방식으로 공개 호소
(바티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영국의 예술·경제·언론·정치 분야 저명인사 40여명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라틴어 미사를 보존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5일(현지시간) 가톨릭뉴스통신(CNA)과 가톨릭 인터넷 매체 더필라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3일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에 게재한 공개서한을 통해 이같이 요청했다.
이들은 "거의 모든 가톨릭교회에서 전통 라틴어 미사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스러운 보도를 최근 접했다"며 "이는 전통 라틴어 미사를 통해 신앙을 키워온 수많은 젊은 가톨릭 신자에게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모든 사람이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가 너무 쉽게 잊히는 세상에서 라틴어 미사를 없애는 것은 불필요하고 무신경한 행동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침묵과 묵상을 유도하는 옛 전례의 능력은 쉽게 복제할 수 없는 보물로 사라지면 재건도 불가능하다"며 "이 장엄한 정신·문화적 유산에 대한 접근을 더 이상 제한하는 것을 재고해줄 것을 교황청에 간청한다"고 밝혔다.
이 서한에는 영국 드라마 '다운튼 애비'의 창작자 줄리언 펠로우즈, 롤링스톤스 리드보컬인 믹 재거의 첫 번째 아내로 유명한 인권 운동가 비앙카 재거, 성악가 키리 테 카나와,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 역사학자 톰 홀랜드 등이 서명했다.
영국의 문화계 거장들이 전통 라틴어 미사를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71년 유명 추리소설 작가인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 등 50여명의 문학, 예술, 정치계 인사가 더타임스에 항의 서한을 실었다.
당시 이들은 가톨릭교회가 일반 대중에게 더 쉽게 다가가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 미사를 허용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 이후 영국에서 전통적인 라틴어 미사가 영어로 대체된다는 소식에 우려를 표했다.
또 옛 전례가 수많은 시, 철학, 음악, 건축, 그림, 조각상 등의 예술품에 영감을 줬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는 인간문화의 보편적인 유산이 된 만큼 교회가 이를 폐지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호소는 바오로 6세 교황에게 전달됐고 크리스티의 열성적인 독자로 유명했던 바오로 6세 교황은 서명자 명단을 확인하며 "아, 애거사 크리스티"라고 외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서한은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주교들은 새 미사 전례와 함께 옛 미사 전례도 집전할 수 있는 허가(indult)를 받았다. 1984년에 비슷한 허가는 전 세계적으로 주어졌다.
더필라는 오늘날 영국의 문화계 저명인사들이 새로운 '애거사 크리스티 서한'으로 교황청에 라틴어 미사를 유지할 것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가톨릭 웹사이트 로라테카엘리는 전통적인 라틴어 미사를 금지하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지만 더필라는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1년 발표한 자의 교서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엄격하게 실천한다는 취지에서 전통 라틴어 미사를 제한했지만 미국과 유럽의 가톨릭 보수파를 중심으로 이를 고수하려는 활동은 끊이지 않았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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