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신영 기자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8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올린 글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큰 민주주의국가의 지도자가 이런 날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범죄자를 모스크바에서 껴안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며 평화를 위한 노력에도 치명상을 입히는 일"이라고 적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시내 아동병원 등에 러시아 미사일이 떨어져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도 같은 날 오후 모디 총리가 예정됐던 대로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을 진행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이날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키이우·드니프로·크리비리흐·슬로비안스크·크라마토르스크 등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들에선 최소 37명이 숨지고 170여명이 다쳤다.
이 중 일부 지역은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인구 밀집 지역이었고, 특히 키이우 아동병원은 건물 일부가 붕괴하면서 의사 등 성인 2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모디 총리의 러시아 방문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3월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모디 총리에게 앞다퉈 총선 이후 자국을 방문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지난달 3연임에 성공한 모디 총리는 이중 러시아를 첫 번째 해외 방문국으로 선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달 2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조속한 휴전과 평화협상을 촉구한 데 이어 5일에는 러시아를 찾아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평화방안을 논의하는 등 행보를 보인 오르반 총리에 대해서도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양자 안보협정 체결을 위해 폴란드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르반 총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며 "러시아보다 훨씬 더 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춘 강대국만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그런 나라로는 미국이나 중국, 혹은 유럽연합(EU) 전체를 꼽을 수 있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러면서 오르반 총리와 푸틴 대통령의 협상은 우크라이나와 조율된 것도 아니라며 "푸틴이 특정 국가와 만났다고 하더라도 이는 그가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평화를 위한 제안에는 항상 열려있지만, 이는 10개 항으로 된 평화 공식 등 우크라이나의 비전과 일치해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2022년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러시아군 철수와 정의 회복, 핵 안전과 식량 안보, 에너지 안보 등 10개 항으로 이뤄진 우크라이나전 평화 공식을 제안한 바 있다.
미국 주도 안보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면서도 친러 성향을 보여온 오르반 총리는 이달 1일부터 헝가리가 2024년 하반기 EU 순회의장국이 되자마자 평화 임무를 자임하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중국을 잇달아 방문 중이다.
그는 자신을 '평화 사절단'으로 규정하지만, EU 내부에선 우크라이나 전쟁 및 통상·안보 현안을 놓고 대립해온 중·러에 대한 기존 정책 기조와 결이 다른 행보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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