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치 위기에 낮은 행보…5년전 '나토 뇌사'식 대담성과는 딴판
우크라에 변함없는 지원 약속…연정 구성 밝은 숄츠 獨총리 조언 듣기도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조기 총선이라는 정치적 도박 이후 안방에서 답답한 처지에 몰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프랑스 정국 혼란에 쏠린 국제사회의 우려를 진화하는데 골몰한 것으로 전해졌다.
11일(현지시간) 로이터,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기자회견도 단 한 차례만 하는 등 언론 노출을 자제하고, 그 대신 막후에서 각국 정상들을 만나 지난 7일 실시된 프랑스 총선 2차 투표 결과가 당초 우려처럼 그리 나쁘진 않았음을 분주히 설명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 성향 범여권은 지난 7일 치러진 조기총선 결선투표에서 2위로 밀리면서 총리직을 반납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제1당으로 도약한 좌파연합 신민중전선(NFP)도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NFP와 범여권,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RN)이 연립정부 구성을 놓고 합종연횡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나토는 3년째에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목소리를 내온 프랑스의 정국 불안정이 나토 동맹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면서 프랑스 정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유럽 국가 당국자 3명은 마크롱 대통령이 이날 나토의 의사결정기구인 북대서양위원회(NAC) 회동의 상당한 시간을 프랑스 정치 상황을 설명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프랑스의 지지를 재확인하는 데 할애했다고 로이터에 밝혔다.
또한 회의와는 별도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는 연정 구성에 대한 조언을 듣기도 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익명을 요구한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독일은 프랑스와 달리 각각 다른 철학과 정책을 가진 정당들이 손을 잡고 집권하는 방식에 밝은 편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스스로도 서로 다른 정치 세력을 아우르는 연정을 이끌어 가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는 숄츠 총리는 이날 프랑스의 정국 혼란과 관련, 나토 정상회의를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정국 혼란에 대한)해결책을 찾고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정치인들 몫으로, (프랑스의 연정 구성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프랑스의 정국 혼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듯한 견해를 밝힌 셈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나토 정상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국내 정국 불안정에 따른 국제사회의 우려를 의식한 듯 "프랑스는 나토 동맹과 우크라이나와 관련된 국제적인 약속에 연속성을 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프랑스 정치 상황과 정국 혼란이 국제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이 자리에서 프랑스 국내 정치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는 말로 선을 그었다.
로이터 통신은 평소 말이 많은 성향인 마크롱 대통령의 이런 '로 키' 행보와 관련, 나토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도발적인 발언으로 5년 전 나토 70주년 정상회의를 뒤흔들어 놨던 마크롱 대통령 특유의 배짱이 프랑스의 정치적인 불안 상황과 맞물리며 창설 75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나토 무대에서는 실종됐다고 논평했다.
실제로 국제 현안에 대한 거침 없는 발언으로 재임 내내 국제 무대에서 집중 조명을 받아온 마크롱 대통령이지만, 이번 워싱턴DC 정상회의는 국내 정국 혼란으로 인해 우선순위에서 밀린 듯한 모양새이다. 그는 이번 정상회의에 당초보다 일정을 대폭 줄여 36시간만 머물고, 첫날 공식 만찬에도 불참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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