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한컴·위메이드 수장들, 검·경 수사선상…"쇄신 계기돼야" 자성론도
(서울=연합뉴스) 최현석 기자 = 대표적 토종 IT기업 수장들이 잇따라 사법리스크에 직면하자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국내 대표 플랫폼 기업인 카카오[035720]와 토종 벤처 맏형격인 한글과컴퓨터[030520], 가상화폐 발행사 겸 게임사 위메이드[112040]의 수장들이 나란히 사정당국의 수사선상에 올랐거나 오를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IT업계에서는 건강한 IT생태계 조성을 위해 자성의 계기가 돼야 한다는 자성론이 대두하고 있지만 대형 플랫폼의 투자 위축으로 스타트업 성장을 위한 생태계가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 카카오 창업자 구속 기로…'영장 기각' 한컴·'수사 선상' 위메이드도 긴장
21일 ICT업계에 따르면 오는 22일 오후 서울남부지법에서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CA협의체 경영쇄신위원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한정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다.
앞서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장대규 부장검사)는 지난 17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김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작년 2월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352820]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엔터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원보다 높게 설정·고정할 목적으로 시세조종을 벌인 혐의를 받는다.
이외에도 김 위원장은 카카오의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 관계사 임원들이 횡령·배임 등 혐의로 고발된 건으로도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워드프로세서 '한글'로 유명한 중견 소프트웨어(SW)기업 한글과컴퓨터(한컴)의 김상철 회장은 같은 날 비자금 조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받았다.
그는 한컴 최대주주 한컴위드[054920]가 투자한 가상화폐 '아로와나토큰'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사건 전반을 주도한 혐의를 받는다. 현재는 상장 폐지된 상태인 아로와나토큰은 2021년 4월 20일 첫 상장한 지 30분 만에 최초 거래가인 50원에서 1천75배(10만7천500%)인 5만3천800원까지 치솟아 시세 조작 의혹이 불거졌다.
게임업체 위메이드는 코인 위믹스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위믹스는 2020년 10월 암호화폐거래소 빗썸 상장을 시작으로 2021년 12월 코인원, 2022년 1월 업비트에 차례로 상장됐지만 유통 계획과 실제 유통량이 다르다는 이유로 2022년 10월 유의 종목으로 지정됐고 같은 해 12월 상장 폐지됐다.
이후 위믹스는 업비트를 제외한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 4개 거래소에 재상장됐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위메이드가 과거 위믹스 발행 과정에서 유통량을 속여 큰 손해를 입혔다며 작년 5월 당시 위메이드 대표였던 장현국 부회장을 사기와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위메이드는 관련 가상자산 거래소인 '피닉스'와 지갑 서비스 업체 '플레이월렛'에 대한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검찰은 작년 5월 위메이드를 압수 수색을 한 데 이어 6월 업비트·빗썸·코인원을 압수수색해 위믹스 발행·유통 내역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 "성장 치중 관행 벗어나야" vs "가혹한 처벌은 IT생태계 위축시켜"
검찰이 아직 위메이드 장 부회장 등을 소환하지 않고 있지만 수사가 시작된 지 1년 2개월이 지난 만큼 소환이 임박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컴 김 회장은 18일 법원이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해 구속을 면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사건 공범인 김 회장의 아들(차남)이자 한컴위드 사내이사 김모(35)씨와 가상화폐 운용사 아로와나테크 대표 정모(48)씨는 1심에서 각각 징역 3년과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은 상태이다.
카카오 김 위원장 역시 영장 청구 이튿날인 18일 사내 회의에서 "진행 중인 사안이라 상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현재 받는 혐의는 사실이 아니다. 어떤 불법 행위도 지시하거나 용인한 적 없는 만큼 결국 사실이 밝혀지리라 믿는다"며 혐의를 강력 부인했지만 영장전담판사가 과거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적 있어 사내에서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
국내 대표 SNS기업과 SW기업, 게임사 수장들이 일제히 사정당국의 수사 대상이 되자 그동안 고성장에 치중했던 IT기업들이 자성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김 위원장에 대한 영장 청구에 대해 "너무 안타깝다"며 "ESG(환경·사회적 책무·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윤리 경영을 중시하는 분위기에서 카카오가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특단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정현 중앙대 가상융합대학장도 "수십년간 제조업 재벌에 대한 수사와 감시가 집중되는 사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인식된 IT업체들은 감시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며 "대기업이 된 이후로도 벤처 시절의 방만 운영을 지속했던 만큼 이번 기회에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표적 IT업계 수장들에 대한 과도한 처벌이 잇따를 경우 2000년대 초반 이후 20여년간 어렵게 조성된 IT 생태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업계 일각에서 나온다.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자금 투자나 지분 매입을 통해 중견 벤처로 키웠던 대형 플랫폼들이 투자 등에 소극적인 자세로 바뀌며 스타트업 업계 전반에 자금 경색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카카오 계열 벤처캐피탈 카카오벤처스는 2012년 설립 이후 250여개 극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당근과 두나무, 한국신용데이터, 시프트업[462870] 4곳의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기업)을 배출했다. 2020년 투자한 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은 세계 시장에서 토종 반도체 스타트업으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으며 루닛[328130], 시프트업 등은 상장에 성공했다. 또 다른 계열사 카카오인베스트먼트는 야나두, 키즈노트 등 80여개 국내외 스타트업에 1조3천억원을 투자했다.
위 학장은 "사주가 경영진의 M&A(인수·합병) 계획 동의 등 이유로 구속까지 되면 성장성 있는 스타트업 지원 움직임이 움츠러들 수 있다"며 "가상화폐 조작 같은 사건이 아니고 증거인멸 우려도 없다면 불구속 상태에서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릴 기회를 줄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플랫폼 산업의 발전이 중요한 시기인데 IT업체 수장의 사법 리스크가 자꾸 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디지털 혁신은 사실 스타트업 등 작은 기업들 쪽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IT업체들의 사기나 의지가 저하되지 않도록 어떤 배려나 조치를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harris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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