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1970년대 서독을 공포에 빠뜨린 무장 테러조직 '적군파'(RAF)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따른 공산주의 혁명을 주창했다. 혁명 수단은 테러였다. 정재계 유력인사 33명을 살해하고 민항기를 납치하는가 하면 독일 내 미군기지에 폭탄을 터뜨렸다. 아버지가 니더작센주 총리였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테러 위협에 1978년 영국 런던정경대에 입학하면서 가명을 써야 했다.
'금지를 금지하라'라는 낭만적 구호를 내걸고 반전과 반제국주의·성평등을 주장한 서구 청년운동 68혁명이 이들의 이념적 뿌리였다. 그러나 낭만이 테러로 변질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적군파는 은행강도로 범행자금을 마련하고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으로부터 무기 사용법을 배웠다. 옛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는 이들을 은밀히 지원했다.
적군파는 테러의 대명사로 아직도 독일 사회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1998년 공식 해체 이후 잔존세력인 이른바 '적군파 3세대'는 현금수송차량과 슈퍼마켓을 털며 '생계형 강도'로 전락했다. 경찰은 이제 칠순이 된 3세대 조직원을 여전히 추적 중이다. 한편에선 은신한 조직원 지지 시위가 열린다. 지금까지 이들을 소재로 제작한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30편을 넘는다.
독일 국내정보기관 연방헌법수호청(BfV)은 1947년 창간한 융게벨트를 일간지 가운데 유일하게 좌익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해 감시하고 있다. 이 신문은 헌법수호청의 극단주의 보고서에서 자사를 빼달라며 소송을 냈다. 법원은 최근 융게벨트의 청구를 기각하며 과거 적군파에 지면을 내준 점을 근거의 하나로 들었다.
헌법수호청은 '극단주의 감별사' 역할을 한다. 극단주의로 규정한 단체를 도·감청 등 수단을 동원해 감시한다. 월간지 콤팍트는 2021년 우익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돼 감시받다가 최근 발행 금지 조치로 사실상 폐간됐다.
헌법수호청에 사법부 허가도 없이 기본권 침해에 해당하는 정보활동 권한을 준 데는 국가사회주의를 내세워 전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나치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자본주의와 의회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을 뿌리부터 잘라내겠다는 얘기다. 그래서 극단주의로 '의심'되는 단체도 감시대상으로 둔다.
1970년 적군파를 창설한 이들은 원래 출판 편집자나 잡지 기자, 변호사였다. 극단주의에 대한 독일 사회의 경계심에는 급진 좌파에서 테러리스트로 변신한 이들의 궤적도 영향을 미쳤다. 극과 극은 서양에서도 통하는 탓에 극단주의에 대한 경계는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적군파 창설 멤버 호르스트 말러는 훗날 신나치주의자가 돼 법정에 섰고, 콤팍트 발행인 위르겐 엘제서는 과거 융게벨트를 비롯한 좌파 매체에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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