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따로 승리 주장…'3선' 마두로 "폭력 불용" vs 야권 "협박 못받아들여" 불복
포스트 대선 정국 후유증 극심…국제사회 우려 속 대대적 반정부 시위 예고
'脫베네수' 엑소더스도 줄 이을 듯…美, 제재 강화 카드 꺼내나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베네수엘라가 28일(현지시간) 대선 이후 극심한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서방 언론과의 잇단 인터뷰와 유세 과정에서의 지지세 분출 등을 기반으로 정권 교체 자신감을 보였던 중도 보수 성향 민주야권은 좌파 니콜라스 마두로(61) 대통령의 3선 성공이라는 선거관리위원회(CNE)의 발표에 허탈감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민주야권 측은 "우리가 승자"라며 승리를 자체 선언하는 등 사실상 대선 불복 카드까지 꺼내들며 강력한 판 흔들기에 나설 조짐이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베네수엘라 독재자가 오염된 선거에서 승자라고 선언됐다"며 "마두로에게 대통령으로서 6년을 더 부여할 이번 결과는 야당의 논쟁을 촉발했다. 투표는 부정으로 벌집이 됐다"고 촌평했다.
미 CNN 방송은 "미국이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베네수엘라 독재자 마두로가 당선에 성공했다고 당국이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대선 투표 직후 베네수엘라 선관위는 6시간 넘게 실시간 개표 상황을 공개하지 않았다가, 자정을 넘어선 이튿날 0시 10분께 "개표율 80% 기준 득표 추이상 마두로 대통령이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평소의 자신만만한 모습과 달리 수도 카라카스에서 투표한 후 별다른 '메시지'를 내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던 마두로 대통령은 선관위 발표 직후 지지자들을 찾아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언사로 "국민은 평화와 안정, 법치를 택했다"며 "나는 폭력의 소용돌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부터 11년째 이어진 마두로 집권 종식을 넘어 '마두로의 정치적 스승'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으로부터 이어지는 25년의 '차비스모'(중앙집권적 민족주의 포퓰리즘 성향의 사회주의)를 "끝장낼 것"이라고 기대했던 민주야권은 그러나 이번 결과를 용인하지 않겠다며 들고 일어났다.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74) 후보를 지원하며 세몰이에 나섰던 민주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56)는 곧바로 선거 캠프를 찾아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진실은 우리 후보가 70% 득표율로 승리했다는 것"이라며 "그들(집권당)이 무엇을 하려는지 국제 사회 전체가 알고 있다"며 '깜깜이 개표'를 성토했다.
마차도는 이어 "진실을 수호하려는 시도를 폭력으로 간주하는 협박을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선거 불복 운동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포스트 대선' 베네수엘라 정국은 집권당과 민주야권 간 극도의 대립 속에 2014년과 2017년 각각 40여명, 120여명의 사망자를 낸 반정부 시위와 같은 악몽을 반복할 공산도 커졌다.
2019년 '한 지붕 두 대통령' 체제와 유사한 상황이 재연될 여지도 있다.
앞서 마두로 대통령은 '부정선거·관권선거'를 주장하는 야당의 불참 속에 2018년 치른 '반쪽 대선'을 통해 재선에 성공했다.
당시 여소야대 국회는 2019년 1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세웠는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일제히 과이도를 지지하면서 한 지붕 두 대통령 사태가 빚어진 바 있다.
이번 대선 직후로도 아르헨티나와 페루, 코스타리카 등 일부 주변국에서는 '마두로의 사기 승리 거부' 또는 '마두로 대통령 인정 불가' 같은 반응을 보이며 불투명한 선거 행정을 강도 높게 비판할 태세를 보인다.
앞서 과이도는 2019년 4월 야권 분열과 277석으로 늘어난 2020년 총선에서의 참패 이후 2022년 12월 불명예 퇴진했다.
극심한 경제난과 사회 혼란, 반정부 인사에 대한 탄압 우려 속에 모국을 등지는 이들도 속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지붕 두 대통령 체제' 전후인 2015∼2020년 사이에, 베네수엘라에서는 340만명(국제이주기구 추산)이 외국으로 터전을 옮겼다. 이는 올해까지 약 10년새 770만∼800만명으로 불어났다고 NYT는 보도했다.
영국 BBC방송 스페인어판(BBC문도)은 현지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 "마두로 대통령이 다시 당선될 경우 베네수엘라를 떠나겠다는 응답자는 현재 인구(2천800만명 추산)의 10%에 달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BBC문도는 선거 과정의 공정성 논란과는 관계 없이 "마두로 승리"를 기화로 베네수엘라를 떠날 계획이 있는 주민들의 규모는 "증가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중남미 이주자의 최종 목적지는 대부분 미국이어서, 베네수엘라의 이번 대선을 둘러싼 논란은 미국 정부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선 대(對)베네수엘라 석유 및 가스 산업을 중심으로 한 제재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도 있다.
앞서 미 당국자는 "미국은 이번 일요일 베네수엘라 대선 상황에 따라 제재 정책을 조정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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