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러, WSJ 기자 등 24명 수감자 맞교환…냉전 이후 최대 규모

입력 2024-08-02 05:08   수정 2024-08-02 13:34

서방-러, WSJ 기자 등 24명 수감자 맞교환…냉전 이후 최대 규모
러, 미국인 3명 등 모두 16명 석방…서방, 러 국적자 8명 송환
바이든 "외교와 우정의 개가…동맹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
CIA 국장 터키서 막후협상…설리번, 브리핑 도중 눈시울 붉히기도



(워싱턴=연합뉴스) 김경희 특파원 =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러시아가 1일(현지시간) 각각 수감 중이던 24명을 동시에 석방하는 방식으로 수감자를 맞교환했다.
이는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의 수감자 맞교환이다.
러시아는 이날 간첩 혐의를 받고 러시아에 수감 중인 월스트리트저널(WS)의 에반 게르시코비치 기자 등 3명의 미국인을 포함해 모두 16명을 석방했고, 이에 대응해 서방에서는 8명의 러시아 국적 수감자를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백악관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에반 게르시코비치를 포함해 미국 해병대 출신 폴 휠런, 자유유럽방송(RFE) 기자 알수 쿠르마셰바 등 3명의 미국인과 1명의 영주권자와 함께 5명의 독일인, 7명의 러시아인 등 그동안 러시아에 수감돼 있던 16명이 석방됐다고 밝혔다.
러시아에서 풀려난 러시아인 중 대부분은 수감 중 사망한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와 함께 했던 인사들이다.
반면에 서방에서 석방된 8명의 러시아 국적자 중에는 독일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암살자 바딤 크라시코프가 포함됐다.
크라시코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교환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번 수감자 교환 협상에는 미국과 독일, 러시아 뿐 아니라 터키, 폴란드, 슬로베니아, 노르웨이, 벨라루스도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연설을 통해 "러시아 당국은 어떤 합법적 이유도 없이 이들을 오랜 시간 구금해 왔다"며 "3명의 미국인들은 모두 부당하게 간첩 혐의를 적용받았다"고 규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석방은 외교와 우정의 개가"라며 "동맹들의 도움 없이 이번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게 특히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직접 대화 여부에 대해선 "그와 직접 접촉할 필요는 없다"며 분명한 선을 그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별도 브리핑을 통해 "우리는 역사상 가장 크고 복잡한 맞교환을 성사했다"며 이번 수감자 교환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푸틴과 직접적 관여는 없었다"고 부인한 뒤 "러시아 공직자들과 광범위한 접촉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는 언급하지 않겠다"며 러시아측 협상 대상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설리번 보좌관은 브리핑에서 협상 과정을 설명하는 도중 눈시울을 붉혔고,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등 감정에 북받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저녁 미국으로 돌아오는 석방자들을 직접 맞이할 계획이라고 설리번 보좌관은 밝혔다.
몽골 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석방자들이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한 것처럼 들렸다"며 이들의 귀환을 환영했다.
블링컨 장관은 휠런 등과 몇 차례 통화를 진행한 바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복잡한 막후 협상을 거쳐 도출된 이번 맞교환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외교적 승리"라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그간 여러 차례 억류된 미국인들을 모두 집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약속을 해 왔다"고 설명했다.
에반 게르시코비치가 소속된 WSJ은 그의 복귀에 따른 지원 계획을 세워놓았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협상을 계기로 미국과 러시아가 관계 개선을 이룰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로이터는 지적했다.
양국은 2022년 12월에도 러시아에 수감 중이던 미국 농구선수 브리트니 그라이너와 미국에서 복역하던 러시아 무기 판매상 빅토르 부트를 맞교환한 바 있다.
CNN은 이번 대규모 맞교환에 앞서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이 터키를 방문해 물밑 협상을 진행했으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역시 지난 2월 뮌헨안보회의에서 두 차례에 걸쳐 숄츠 독일 총리 등과 대화를 하며 문제해결에 주력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 언론들은 러시아가 억류 중인 미국인들에 대한 재판을 지난달에 이례적으로 서둘러 진행하자 양국간 수감자 맞교환 가능성을 거론해 왔다.
앞서 러시아는 지난달 19일 에반 게르시코비치에게 간첩 혐의를 이유로 징역 16년형을 선고했고, 같은 날 알수 쿠르마셰바에게도 6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했다.
에반 게르시코비치는 지난해 3월 취재 목적으로 방문한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연방보안국에 체포됐으며, 러시아 검찰은 그가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시를 받고 군수 업체의 비밀 정보를 수집했다고 주장했다.
쿠르마셰바는 지난해 6월 이중국적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권을 압수당한 뒤 '외국 대리인'으로 등록하지 않고 활동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러시아군 관련 허위 정보 유포 혐의로 기소됐다.
폴 휠런의 경우 간첩 혐의로 징역 16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한편 백악관은 해리스 부통령이 나발니의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와 통화했다고도 확인했다.
러시아에서는 지난 2월 수감자 맞교환이 이뤄졌다면, 나발니가 석방 대상에 포함됐을 것이라는 탄식이 이어지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kyungh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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