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에스코바르 상징물 판매 금지 논의…노점상은 반발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남미 콜롬비아 의회가 자국 출신 '최악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관련한 기념품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어 주목된다.
5일(현지시간) 콜롬비아 일간 엘티엠포에 따르면 녹색당 대표인 크리스티안 아벤다뇨 하원 의원은 최근 에스코바르 얼굴과 이름 등을 인쇄하거나 조각한 물품을 상업적으로 거래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에스코바르는 1980∼1990년대 콜롬비아를 넘어 전 세계 최대 마약 밀매 조직으로 꼽히던 메데인 카르텔의 창설자이자 수괴다.
그는 한때 미국 시장으로 들어가는 코카인의 80%를 유통해 '코카인의 제왕'으로 불렸다. 1989년엔 미국 포브스지에서 선정한 세계 7대 부자에 들어갈 정도로 큰 부를 쌓았다. 하마를 반려동물로 기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메데인 카르텔은 4천 명 이상을 대상으로 살인과 납치 등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를 소재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의 글로벌 인기로 메데인을 비롯해 에스코바르와 연결된 지역으로 8∼9년 전부터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몰려들고 있다.
아벤다뇨 의원은 "나르코노벨라(마약 범죄를 소재로 삼은 영화나 드라마) 영향으로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것을 넘어 마피아 보스의 얼굴과 이름이 가득한 상품들이 마구 팔리다 보니 피해자 유족 등이 되레 힘들어하고 있다"며 "국가를 위한 다른 상징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고 엘티엠포는 보도했다.
실제 에스코바르 관련 상품은 사실상 콜롬비아 전역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한때는 국제공항에서도 에스코바르 티셔츠를 파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아벤다뇨 의원은 지적했다.
현재 의회에서 논의 중인 법안은 에스코바르를 비롯해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를 상징하는 상품을 파는 상인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한편 에스코바르 티셔츠나 모자, 열쇠고리 등을 착용하거나 소지한 사람에게도 처벌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벤다뇨 의원은 "우리가 겪었던 폭력의 역사를 미화할 수 있는 잘못된 흐름을 막아보자는 것"이라며 "이는 앞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선례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콜롬비아에서는 '살인마' 에스코바르에 대한 상업화에 대해 경계하는 움직임이 있다.
지난해 콜롬비아 정부는 에스코바르 미망인과 자녀 등이 교육·레저용 제품 생산을 위해 신청한 파블로 에스코바르 이름 관련 상표권 신청을 거부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그 이유로 "파블로 에스코바르 상표화는 공공질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현지 일간 엘에스펙타도르는 보도했다.
하지만 현지 상인들은 생계유지와 경제 활동의 자유 보장 등을 이유로 이런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 얼굴 자석과 티셔츠 등을 파는 노점상 라파엘 니에토는 AP통신에 "(하원에 발의된 것은) 멍청한 법안이라고 생각한다"며 "의원들은 도시의 범죄율을 낮추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고 내 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길 바란다"고 말했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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