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군 몰아내지 못하고 고전
우크라 병사들 "더 깊이 들어간다"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러시아의 침공으로 2년 반 동안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로 진격하는 역습을 감행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허를 찔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본토 진격 이후 6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우크라이나군을 몰아내지 못한 채 고전하고 있다. 전세를 일거에 뒤바꿀 정도는 아니라지만, 전쟁의 불길을 러시아 본토로 옮긴다는 우크라이나 측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는 평가다.
1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 쿠르스크주(州)와 인접한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서 FT 취재진과 만난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은 여러 부대가 번갈아 가며 쿠르스크로 투입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6일 이후 이미 세 차례나 국경을 넘어 작전을 벌였다는 우크라이나군 병사 데니스는 "우리는 더 깊이 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측이 예비병력을 끌어모으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우크라이나군이 우세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데니스가 속한 부대는 도네츠크주 동부에 배치돼 있다가 이번 공세에 참여하기 위해 최근 이곳으로 이동해 왔다고 한다.
또 다른 병사 코스챤틴은 기습 작전의 초반부가 성공하면서 "사기가 정말로 높아졌다"며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을 비롯한 러시아 군수뇌부는 쿠르스크주의 상황이 통제하에 있다고 주장하며, 우크라이나군을 폭격하는 전투기와 헬기 등의 영상을 배포하고 있다.
하지만, 진위 확인을 거친 영상과 사진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우크라이나군은 국경에서 30㎞ 이상 떨어진 곳까지 진격해 쿠르스크주의 소도시 수드자와 주변 여러 마을을 장악하며 점령지를 넓혀가는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FT는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0일 밤 영상 연설을 통해 러시아 본토 공격을 처음으로 확인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정의를 회복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침략자에게 필요한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보장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쿠르스크의 러시아군이 올해 여름에만 2천차례에 걸쳐 국경 너머 우크라이나 수미주를 공격했다면서 "야포와 박격포, 드론(무인기) 그리고 미사일 공격이 있었다. 그런 공격들에는 각각 합당한 대응이 있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소셜미디어에는 쿠르스크주의 한 마을 관공서에 우크라이나 깃발을 게양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공유됐다. 일각에선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점령한 마을 주민들에게 주민투표를 준비하라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같은 해 9월 도네츠크, 헤르손, 루한스크, 자포리자 등 우크라이나 4개 점령지에서 주민투표를 진행하고 이를 명분 삼아 해당 지역을 러시아에 합병했는데 이를 비꼰 발언일 수 있다.
서방과 우크라이나는 당시 러시아군이 주민들에게 합병 찬성을 강요한 정황이 있다는 이유로 이를 인정하지 않아 왔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 작전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러시아 땅을 계속 점령할 수 있다면 향후 러시아와 종전 및 영토반환 협상을 벌일 때 유용한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쿠르스크 현지 원자력발전소를 장악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 BBC 방송은 이날 관련 영상을 분석한 결과 러시아군이 쿠르스크 원전 남동쪽 인근에서 중장비 등을 동원해 참호를 새로 구축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설령 러시아의 반격에 우크라이나군이 철수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전쟁의 양상에는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본토를 공격받을 수 있다는 변수가 생기면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만 전력을 집중하기 어려운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에 점령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제외하더라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여전히 수백㎞에 걸쳐 국토를 맞대고 있는데 이곳 모두에서 방비를 강화할 필요성이 생겨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면서 전쟁이 더욱 격화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마이클 클라크 특별연구원은 10일 일간 더타임스에 실린 기고문에서 "러시아 침공은 지금껏 젤렌스키가 내린 가장 위험한 결정"이라면서 "러시아 정부는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이번 (본토) 침입을 끝내는 것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군이 아직은 선전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러시아군의) 압도적 숫자가 전투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본토에 침입한 상황이 계속되는 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만이 이와 비슷할 정도로 위험한 반격 전략이었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과 달리 이번 역공은 전쟁을 뒤집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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