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실권·해외도피 15년만 귀국 군부와 연정…배후서 정권 '좌지우지' 평가
작년 귀국 당시 '모종의 거래설' 태국 군부와 '불안한 동거' 관리가 열쇠
(방콕=연합뉴스) 강종훈 특파원 = 탁신 친나왓 전 총리 막내딸인 패통탄 친나왓(37)이 16일 의회 투표를 거쳐 총리로 선출되면서 탁신 가문이 다시 태국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됐다.
지난해 8월 탁신 세력 프아타이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탁신가의 부활을 알린 데 이어 패통탄의 총리 등극으로 명실상부하게 다시 '탁신 시대'가 열린 형국이다.
통신 재벌 출신으로 지난 2001년 총리가 된 탁신은 2006년 쿠데타로 축출됐고 2008년 부패 혐의 재판을 앞두고 해외로 도피했다가 지난해 15년 만에 귀국했다.
탁신이 귀국한 지난해 8월 22일은 그의 측근인 세타 타위신이 총리로 선출된 날이다.
프아타이당은 총선에서 전진당(MFP)에 밀려 제2당이 됐지만, 친군부 정당과 연대해 정권을 잡았다.
이로써 지난 20여년간 서로 으르렁댔던 탁신과 군부 진영이 한배를 타게 됐다.
귀국 직후 8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탁신은 6개월 만인 지난 2월 18일 가석방됐다.
이후 탁신은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듯한 행보를 보였지만, 배후에서 정권을 좌지우지해왔다는 평가가 나왔다.
탁신은 현재 태국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으로 꼽힌다.
정치와 무관한 삶을 살던 패통탄이 총리가 된 것도 탁신이라는 '뒷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부동산개발업체 SC애셋 최대 주주인 패통탄은 가족 소유 부동산·호텔 관련 사업을 관리하다가 2021년 10월 프아타이당 고문을 맡아 정계에 입문했다.
정치 신인이었음에도 그는 당 선거 운동을 이끌었고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유력한 총리 후보로 꼽혔다.
현 정부 출범 당시 기업인 출신 세타가 총리가 됐지만 실세는 패통탄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다.
프아타이당 대표이자 국가소프트파워전략위원회 부위원장이었지만 패통탄이 선출직을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패통탄이 총리로 취임하면 사실상 탁신이 '상왕'에 가까운 역할을 하며 더욱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것으로 관측된다.
패통탄은 전날 여권 총리 후보로 결정된 뒤 탁신의 역할에 대한 질문에 "항상 많은 조언을 받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버밍엄대 페트라 앨더먼 연구원은 "아버지의 그림자와 영향력이 너무 커서 패통탄이 총리직을 수행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AP통신에 말했다.
향후 탁신가와 군부 진영 관계가 계속 유지될지도 관건이다.
앞서 탁신 귀국과 조기 석방을 두고 태국 정치권 안팎에서는 탁신과 군부 측이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날 의회 투표에서 친군부 정당들이 패통탄을 지지함으로써 일단 양측의 협력 관계는 이어지게 됐지만, '밀월'이 안정적으로 유지될지는 불투명하다.
헌법재판소 판결이라는 형식을 통해서이긴 하지만, 군부 진영 상원 의원들의 문제 제기로 인한 세타 총리 해임은 양측 관계의 균열 발생 신호로 해석되기도 했다.
물론 나뽄 자뚜스리삐딱 싱가포르 ISEAS-유소프 이샥 연구소 연구원은 스트레이츠타임스에 "(양측간) 거래가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양측은 (애초) 세타를 임시 총리로 세우기로 합의했을 수도 있다"고 신중한 입장도 있다.
다만 탁신가가 기본적으로 지난 20년간 군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만큼, 패통탄 신임 총리가 아버지의 '지도'를 받아 향후 국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군부와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탁신뿐만 아니라 여동생 잉락 친나왓 전 총리도 헌재 판결로 해임되고 2014년 쿠데타로 정권을 잃은 바 있다.
태국에서는 1932년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입헌군주제가 도입된 이후 2014년까지 19차례나 쿠데타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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