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 선전 계기로 가혹한 국적법 개정 도마에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이탈리아의 우파 연립정부 파트너들이 이주민 자녀의 국적 취득 조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국적법 개정안에 공개적으로 이견을 드러내며 정면충돌했다.
1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일간지 라레푸블리카에 따르면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인프라 교통부 장관이 이끄는 동맹(Lega)은 지난 14일 페이스북을 통해 "현행법이 잘 작동하고 있다"며 국적법을 개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동맹은 이 게시물에 연정의 또 다른 파트너인 전진이탈리아(FI) 대표인 안토니오 타야니 부총리 겸 외무장관과 제1야당인 민주당(PD)의 엘리 슐라인 대표의 사진을 나란히 올렸다.
반면 FI 대표인 타야니 부총리는 전날 일간지 일메사제로에 "FI는 학교 교육을 통한 시민권 획득을 지지해왔다"며 "이것은 지름길이 아니며 좌파적인 조치도 아니다"라고 맞섰다.
FI는 이탈리아 우파 연정을 구성하는 주요 3개 정당 가운데 가장 중도적인 성향으로 평가받는다.
야당이 추진 중인 국적법 개정안은 이탈리아에서 대부분의 정규 교육을 마친 경우 귀화를 허용하는 내용이다.
이탈리아의 국적법은 유럽에서 가장 엄격하기로 악명이 높다.
태어난 사람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미국과 달리 이탈리아는 현지 출생자라도 부모가 이주자이면 18세가 될 때까지 시민권을 신청할 수 없다.
지독한 관료주의 탓에 시민권 취득 절차에 최장 4년여가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20대 초반에야 정식으로 이탈리아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똑같이 정규 교육을 받고 이탈리아어를 모국어로 받아들이지만, 생후 20년여간은 법적으로 이탈리아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셈이다.
이러한 국적법은 스포츠 분야에도 영향을 미친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실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이탈리아 시민권이 없으면 대표팀에 발탁될 수 없다.
이번 국적법 개정 움직임은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외국계 이탈리아 선수들이 괄목할만한 성적을 거두면서 탄력을 받았다.
이탈리아는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12개, 은메달 13개, 동메달 15개를 휩쓸며 우리나라에 이어 종합순위 9위를 차지했다.
특히 다민족 선수로 구성된 여자배구 대표팀이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며 이탈리아 정치권에 국적법 개정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촉매제가 됐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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