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만 없는' 외국인 전세사기 피해…지원 논의도 '끝순서'

입력 2024-08-19 15:47  

'있지만 없는' 외국인 전세사기 피해…지원 논의도 '끝순서'
특별법 개정안 통과 앞두고 속타는 피해자들…306명 피해 인정
피해 인정받아도 공공임대주택·저리대출 지원은 불가
"최소한 생존권 보장 필요…긴급주거지원 기간이라도 늘려 달라"



(세종=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경기 수원에 사는 30대 중국인 여성 A씨는 500명 넘는 세입자에게 760억원의 피해를 준 '수원 정씨 일가 전세사기 사건'의 피해자다.
10여년 전 한국에 와 쉼 없이 일하며 마련한 전세금이자 전 재산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A씨는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았지만, 이용할 수 있는 지원책이 마땅찮다.
외국인은 전세사기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공공임대주택과 저리 대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그는 "외국인은 전세대출이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전세금이 십수 년간 모은 자기 돈"이라며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경매가 10월이면 재개되는데, 퇴거 이후엔 무슨 돈으로 어딜 가서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 개정안의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 통과가 유력한 상황에서 A씨 같은 외국인 피해자의 박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1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로부터 인정받은 외국인 피해자는 지난달 18일 기준으로 306명이다.
전체 피해자(1만9천621명)의 1.6%에 해당한다.
여야는 22대 국회에 새로 제출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8건을 놓고 피해 지원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논의를 해왔지만, 외국인 피해 지원과 관련해서는 진척이 거의 없다.
지난달 18일과 이달 1일 열린 국토위 국토법안소위에서는 '외국인'을 피해 지원 대상으로 명시하느냐 마느냐의 논의가 있었을 뿐 지원책과 관련한 구체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염태영 의원, 진보당 윤종오 의원 대표발의 법안은 외국인이 전세사기 피해자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시했으나, 정부·여당안에는 빠져 있다.
지금도 내·외국인 구분 없이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법조문에 굳이 '외국인'을 넣을 필요가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만약 특별법에 외국인을 명시하게 되면 외국인 대상으로도 공공임대주택과 정책자금 저리 대출을 추가 지원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 이는 고민해봐야 할 일"이라며 "상호주의 원칙이 있기에 외국인에게도 정부 예산을 들이는 공공임대나 주택도시기금 정책자금 대출을 해줘야 하는지는 판단의 문제"라고 말했다.



외국인 전세사기 피해자도 경·공매 유예와 대행 지원, 조세채권 안분 등 특별법상 지원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공공임대주택 지원 대상이 아니기에 피해주택 우선매수권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넘긴 뒤 살던 집에 계속 거주할 수는 없다.
피해주택을 '셀프 낙찰' 받아 전세금 회수를 꾀한다 해도 낙찰받을 돈을 빌리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내국인 전세사기 피해자는 피해주택 낙찰가 전액(100%)을 대출받을 수 있다.
A씨는 "시중은행에서 빌리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외국인은 담보인정비율(LTV)을 50%만 인정해줘 경매에 참여하기 어렵다"며 "여러 은행을 돌아다니며 상담해 봤지만 결론은 같았다"고 말했다.
외국인이 이용할 수 있는 보금자리론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다세대 빌라의 경우 소액임차보증금을 공제하고 나면 빌릴 수 있는 돈이 최대 1천200만원 수준이라 4인 가족이 이주할 집을 마련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외국인 피해자들은 공공임대주택과 저리대출 지원이 어렵다면 최장 2년인 긴급 지원주택 거주 기간을 늘려주고, 시중은행 대출이라도 원활하게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지금까지 LH 긴급 지원주택을 지원받은 외국인 전세사기 피해자는 인천 3명, 경기 1명 등 4명이 전부다.
외국인 피해자 B씨는 "보증금 반환소송을 하려면 전세계약 해지부터 통보해야 하는데,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 외국인 입장에서는 계약 해지로 비자 재발급이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이 크다"며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비자 문제에 취약한 외국인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드러내거나 단체행동을 하지 못해 계속해서 소외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간 포항 지진 때 외국인에게 긴급 지원주택을 제공했고, 농업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기숙사도 짓고 있다. 이런 주택도 공공주택의 일종이라는 점을 고려해 전세사기 피해 외국인에 대한 주거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지웅 경기전세피해지원센터 센터장은 "전세사기는 제도의 미비로 일어난 부분이 크기 때문에 외국인이더라도 거주 안정을 위한 예외적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며 "긴급지원주택 거주 기간을 외국인에 한해 연장해준 뒤 추후 대책을 별도로 논의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A씨는 "외국인 전세사기 피해자도 내국인 피해자와 똑같이 위험한 상황"이라며 "혜택을 달라는 게 아니라, 적어도 생존권은 보장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chopar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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