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흑인 대통령' 언급 피하고 백인 유권자 공략한 오바마 따라하기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 미국 역사상 첫 흑인 여성 대통령에 도전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11월 대선을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미국 매체 폴리티코는 19일(현지시간) 해리스 부통령이 '여성'이나 '흑인', '인도계'와 같은 정체성에 대한 언급 대신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검사 출신 정치인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경합 주에서 개시한 TV 광고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대학생 시절 방학 기간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과 함께 검사 시절 월스트리트의 거대 은행을 수사했던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이 같은 모습은 지난 2016년 여성 정치인으로서 최초로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클린턴 전 장관의 선거 전략과는 반대라는 것이다.
8년 전 클린턴 전 장관은 유리천장을 깨고 첫 여성 대통령에 도전한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웠다.
당시 힐러리 캠프가 선택한 선거 구호는 '그녀와 함께'(I'm with her)와 '함께하면 더 강하다'(Stronger together)였다.
'미국 유권자들은 여성 대통령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문구였지만, 결과적으로 역대 최악의 선거 구호라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와는 달리 유권자들에게 클린턴 전 장관을 뽑아야 할 이유를 제시하지 않은 공허한 메시지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클린턴 전 장관은 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고,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꿈도 이루지 못했다.
중산층 가정 출신이라는 점과 검사 경력을 부각하는 해리스 부통령의 전략은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었던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전략과 유사하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지난 2008년 대선 당시 오바마 전 대통령은 흑인 유권자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각종 연설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종과 관련한 언급을 피했다.
대신 오바마 전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와 위스콘신, 미시간 등 경합 주의 백인 유권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양한 현안에 집중했고, 결국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 같은 전략은 16년이 지난 올해 대선에서도 유효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일리노이주 최초의 흑인 여성 상원의원이었던 캐럴 모슬리 브라운은 "솔직히 말해서 '난 흑인 최초다'라는 점을 부각해도 도움이 될 것이 없다"며 "오히려 '인종 전략'을 쓴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궁지에 몰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4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도 출마했던 브라운 전 상원의원은 해리스 부통령의 선거전략에 대해 "아주 현명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해리스 부통령은 인종 문제를 부각하지 않을 뿐, 언급 자체를 회피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최근 흑인 명문대 하워드대에서 학생들에게 "여러분들도 언젠가 미국 대통령에 도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흑인 여성을 겨냥한 잡지 '에센스'와의 인터뷰에선 "어린 시절 주변으로부터 '넌 젊고, 재능있고, 흑인이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소개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사용한 '젊고, 재능있고, 흑인'(Young, gifted and black)은 흑인 싱어송라이터 니나 시몬이 작곡한 노래 제목으로, 이 곡은 1960년대 말부터 흑인 민권운동의 주제가처럼 사용됐다.
ko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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