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후보 사퇴에 지난달 21일 출마…'경쟁력 우려' 불식·당 통합 성공
검사 출신으로 '유죄' 트럼프와 대립…反트럼프 표심 흡수해 박빙우세 전환
지지세력 공고화·표 확장성 '과제'…가자문제 등 이슈 놓고 '줄타기' 주목
(워싱턴=연합뉴스) 강병철 특파원 =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59)이 22일(현지시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직을 수락함으로써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여성 대통령이 되기 위한 역사적인 걸음을 내디뎠다.
검사 출신인 해리스 부통령은 그동안 주요 이력 때마다 '최초 흑인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승승장구 해왔다는 점에서 미국 정치사에서 마지막 남은 가장 크고 높은 유리천장을 이번에 깰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국 독립 250주년(2026년)을 앞두고 펼쳐지는 해리스 부통령의 이번 도전은 8년 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나섰다가 분루를 삼켰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때와는 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없이 웃는 존재감 없는 2인자'라는 혹평을 받았던 해리스 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전격적인 대선 후보 사퇴 발표 이후 한 달 만에 선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이런 상승세는 지난 6월말 TV토론 참패를 계기로 재부각된 고령 리스크에 발목이 잡힌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사퇴했을 당시만 해도 예상하기 어려운 그림이었다.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와 자신에 대한 지지 선언이 있었던 순간부터 당내 우호세력은 물론 잠재적 경쟁자 등을 상대로 10시간 넘게 장시간 통화하면서 당을 장악하기 위해 물밑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애초 민주당 당내에서는 대선 흥행을 위해 '미니 경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 막후 실력자인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등 민주당 주요 인사들의 지지(같은달 22일)를 등에 업은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 이틀 만에 대세론을 형성하면서 사실상 대선 후보 승계자로 자리를 굳혔다.
이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의 확고한 지지까지 확보하면서 현직 대통령이 대선 후보직 확정을 위한 전당대회를 한 달 앞두고 사퇴한 사상 초유의 사태 속에서 큰 잡음 없이 조기에 당의 전열을 정비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대선 경쟁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과 선명한 대립각을 만드는데도 성공했다.
검사 출신인 그는 지난달 23일 첫 유세에서 "나는 여성을 학대하는 (성)착취자, 소비자를 등쳐먹는 사기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규칙을 깨고 속임수를 쓰는 사람들 등 모든 유형의 범죄자들을 상대해봤다"면서 4개의 사건으로 형사 기소돼 이 가운데 한 사건에서 유죄 평결을 받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중범죄자로 규정하며 자신을 그 대척점에 놓았다.
이를 계기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피격 사건(7월13일) 이후 '대선은 사실상 끝났다'며 패배감에 빠졌던 민주당원들이 상대적으로 젊은 여성 대선 후보의 등판에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아울러 해리스 부통령과 미국 주류 언론간의 '허니문'이 이어진 것도 해리스 부통령의 상승세에 영향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코넛 나무', '브랫(brat)' 등의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젊은 유권자 표심을 파고든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 6일 '트럼프는 이상해'라는 발언으로 주목받은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를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전격 발탁하면서 모멘텀을 이어갈 수 있는 토대도 마련했다.
자서전 '힐빌리의 노래'로 유명한 '개룡남'(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과 남성을 합친 말) J.D. 밴스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무자녀 캣 레이디' 등의 발언으로 구설에 오르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표를 깎아 먹는 것과 달리 '동네 아재' 이미지의 월즈 후보는 '미친 친화력'으로 해리스 부통령의 표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런 분위기 반전을 토대로 박빙 열세였던 판세도 박빙 우세로 '기적적으로' 바꿔 놓았다
실제로 전국 등록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워싱턴포스트(WP)의 최근 조사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양자 및 다자 가상대결에서 모두 트럼프 전 대통령에 3~4%포인트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여론조사 분석 사이트인 '파이브서티에잇'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7개 경합주 가운데 6곳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밀렸으나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현재 7개 경합주 가운데 5곳(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애리조나, 네바다)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앞서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지아에서는 근소하게 우위에 있으나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해리스 부통령과 동률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런 괄목할만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대선 승리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미국 언론 등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여론 조사상에서 나타나는 우위 자체가 대부분 오차 범위 내에 있는 데다 미국 유권자가 아시아계·흑인 여성을 미군 총사령관으로 선출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은 '넘어야 하는 과제'로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에서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NYT)의 이날 자체 여론조사 비교 분석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가 가장 크게 상승한 그룹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호감을 표명한 유권자였다.
반면 주류 그룹인 백인 남성 유권자들의 지지율은 거의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反)트럼프 세력'은 해리스 부통령을 중심으로 결집했으나 아직 독자적인 지지층 확장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평가인 것이다.
나아가 지금까지는 주로 분위기(vibe)에 기대서 선거운동을 진행했으나 향후에는 정책 선거를 병행해야 한다는 것도 해리스 부통령에게는 부담이 되는 대목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이 해리스 부통령과 바이든 정부의 각종 실정을 결부시키는 상황에서 그는 앞으로 '해리스표 정책'을 내놓고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전통적인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진보 성향 유권자와 중도층 유권자도 끌어 안는 '슬기로운 줄타기'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령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 16일 연방 차원의 식료품 가격 폭리 금지 규제를 공약했는데 일각에선 환영했지만 다른 일각에선 포퓰리즘적 꼼수로 인플레이션 책임을 기업에 전가한다거나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란 비판도 나왔다.
또 해리스 부통령은 대외 정책과 관련해서도 이스라엘 지원이라는 미국의 외교 정책과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 금지 등을 요구하는 진보 진영의 목소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은 이미 중도 성향 유권자를 겨냥해 해리스 부통령이 평균적인 미국인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는 '캘리포니아 리버럴', '급진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연일 공세를 퍼붇고 있다.
반대로 민주당의 주요 지지그룹인 진보 진영에서는 이슈에 따라 해리스 부통령이 충분히 진보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내놓기도 한다.
이와 관련,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전날 전당대회 찬조 연설에서 2016년 대선 때 민주당 지지자 일부가 이탈하면서 배우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이 패배한 것을 상기하며 "적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면서 "그들은 주의를 분산시키고, 의심을 유발하고, 구매자의 후회(buyer's remorse)를 촉발하는 데 매우 능하다"고 경고했다.
solec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