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지출증가율 3.2%, 역대 4번째로 낮아…생계급여 등 민생예산 부각
"세수고민 없이 지출만 죈 건전재정은 반쪽…재정수지에 얽매여선 안돼"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윤석열 정부가 2년째 총지출 증가율을 3% 내외로 묶으면서 '재정 허리띠'를 바싹 조였다.
이로써 재정준칙 약속은 지키게 됐지만 '세수 펑크', 감세 등으로 인한 세수감소 여파로 총지출 증가율은 당초 계획에 크게 미달하게 됐다.
내년 성장률이 다소 둔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재정의 '경기 마중물' 역할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재정건전화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세수기반 확충보다 지출에 무게를 두는 방향은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 '재정준칙'에 방점…尹정부 3년 총지출증가율 '역대 최저'
정부가 27일 발표한 2025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은 3.2%로 지난해 발표된 중기계획(4.2%)에 못 미친다. 총지출 개념이 도입된 2005년 이후 올해(2.8%)와 2010·2016년(각 2.9%)에 이어 4번째로 낮다.
2년째 총지출 증가율이 3% 내외에 묶인 탓에 윤석열 정부 3년간 총지출 증가율(본예산 기준)은 연평균 3.9%를 기록, 4%에 미달하게 됐다. 문재인 정부(8.6%)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이명박(6.3%)·박근혜(4.2%) 정부보다도 낮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총지출 증가율이 작년보다는 증가했지만 높은 수준으로 보기는 어렵다"라며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 크게 약화했고 이를 정상화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지출효율성 제고를 위해 24조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에 더해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무는 '협업 예산'도 추진했다.
하지만 올해 최소 10조원의 '세수 펑크'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법정 의무지출과 연구·개발(R&D) 예산 증액, 의료개혁 등 최소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재정적자를 늘리거나 씀씀이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의 선택은 '지출 증가율 감속'이었다.
결국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묶는 '재정 준칙'은 지킬 수 있게 됐지만 당초 중기계획 대비 '긴축 재정'은 불가피해졌다.
내년 재정이 내수 진작, 성장 잠재력 지원, 필수 공공재 공급 등 재정의 기본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지 회의론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유병서 기획재정부 예산총괄심의관은 "건전재정과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정부의 기조라는 점을 감안했고 총지출 증가율도 당초 계획(4.2%)보다 상당히 낮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9%(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를 타깃팅하거나 숫자 자체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 내수부진에 내년 경기둔화 전망도…"경기 마중물 역할 필요"
문제는 정부가 당장 '재정수지 관리'에 주력해도 될 만큼 향후 경기여건이 여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반도체 업황 회복으로 수출은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고금리·고물가, 실질임금 감소 등으로 내수는 여전히 차갑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이어 한국은행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하향 조정한 것도 이런 내수 부진과 맞닿아 있다.
최근 가계부채 급증세로 통화정책 운신의 폭이 좁아지면서 재정 역할에 대한 기대감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내년 성장률이 올해보다 소폭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 역시 내년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한국은행이 전망한 내년 성장률은 2.1%로 올해(2.4%)보다 낮다. 정부 전망치 역시 올해 2.6%, 내년 2.2%로 비슷한 흐름이다.
정부는 내수부진 장기화 조짐에도 내년 재정 역할을 '인센티브' 중심의 간접 지원에 한정하고 있다. 대표적인 내수 예산으로 꼽히는 사회간접자본(SOC·25조5천억원) 분야 지출은 올해보다 3.6% 줄었다.
김동일 기재부 예산실장은 "재정 총량을 두고 재정 역할 하느냐 못하느냐를 볼 것은 아니다"라며 "총량의 성장 기여도는 낮지 않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간 소비가 좋지 않고 실질소득도 부진한 상황인데 대부분 기관이 내년 성장률이 올해보다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라며 "재정을 묶어두고 내수를 활성화하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 복지지출 증가율 뚝…"저출생 등 위기과제 대응 부족"
정부는 기초생활수급자 생계급여 인상 등을 부각하며 '민생'에 중점을 두고 예산안을 편성했다고 강조했다. 최근 3년 연평균 생계급여 인상액은 166만원으로 2017∼2022년(47만원)의 3배 수준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재정 여력이 줄면서 전체 보건·복지·고용 분야 지출 증가율(4.8%)은 올해 증가 폭(7.5%)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2023년(4.1%)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유병서 예산총괄심의관은 "보건복지 분야에 주택 예산이 포함되는데 이는 변동 폭이 크다"라며 "주택 분야를 제외하면 보건·복지·고용 예산 증가율은 6.6%로 올해(6.7%)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위기 상황으로 거론되는 저출생 등 구조적인 과제들이 상황을 반전할 만큼의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정부가 밝힌 저출생 대응 예산은 올해보다 약 3조6천억원 늘어난 19조7천억원이다.
하지만 육아휴직 급여 인상(월 150만→250만원)을 위해 약 1조4천억원을 증액한 것을 제외하고는 굵직한 증액 사업을 찾기 어렵다.
돌봄서비스 확대, 배우자 출산휴가 급여 인상, 대체인력 지원금 인상 등 기존 대책을 확대한 것들이 대다수이고,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자영업자는 상당수가 여전히 지원 사각지대에 방치돼있다.
조용범 기재부 사회예산심의관은 "저출생은 재정으로만 풀 문제는 아니고 사회제도, 삶에 대한 인식, 문화 등이 겹쳐 있는 것"이라며 "예년과 달리 일·가정 양립에 재정을 투입해 분위기를 반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하준경 교수는 "저출생 문제를 국가 위기 상황이라고 선언했다면 그에 걸맞은 예산 뒷받침과 대응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내년 R&D 예산(29조7천억원)은 11.8%나 늘지만 총량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29조3천억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올해 일방적인 삭감의 후유증을 호소하는 현장 목소리가 계속되면서 예산 증액에 대한 기대감은 다소 반감된 분위기다.
청년 일자리 예산은 4조원에서 4조1천억원으로 1천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최근 15∼29세 청년층을 중심으로 '쉬었음' 등 비경제활동인구가 늘면서 고용 시장 활력 저하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다.
◇ "재정수지 목표 집착하면 거시경제 부작용 생길 수도"
정부가 부족한 재원에도 약자복지·의료개혁 등에 중점을 두면서 재정적자를 줄인 점은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세수 기반 확충에 대한 고민 없이 지출만 줄이는 방향의 건전재정은 중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윤석열 정부는 2년째 계속된 세수 펑크에도 대기업·고소득자 중심의 감세 정책을 고수하고 있지만 뚜렷한 세수 기반 확충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세수 펑크에 대한 고민·대책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건전 재정만 강조하는 것은 전체를 보지 않고 하나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재정 준칙의 지표로 활용되는 관리재정수지는 1∼2년의 단기가 아닌 경기 순환 주기 수준의 중장기적으로 관리하고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년 단위로 관리재정수지에 얽매일 경우 더 중요한 재정의 본질적인 역할에 자칫 소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준경 교수는 "해외에서도 통합재정수지와 유사한 지표를 활용하지만 이를 경직적으로 지키는 나라는 많지 않다"라며 "재정수지 목표를 설정하고 집착하면 거시경제 관점에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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