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발발 직전 태어나 예방접종 못 받아
"접종하려면 휴전 필수"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아기가 갑자기 기어 다니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일어서거나 앉지도 않았어요."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가자지구에서 태어난 생후 10개월 된 압델-라흐만 아부 엘 제디안은 일찌감치 기어 다니기 시작하며 가족들에게 기쁨을 안겼다.
그러던 어느 날 아기의 왼쪽 다리가 마비된 것처럼 얼어붙었다. 검사 결과 소아마비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27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아기의 어머니 네빈 아부 엘-제디안은 활발하게 움직이던 아이가 "갑자기 반대로 변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압델-라흐만은 25년 만에 처음으로 가자지구에서 소아마비로 확인된 사례다.
전쟁 전 가자지구의 어린이들은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받았다.
그러나 전쟁 발발 직전에 태어난 압델-라흐만은 가족이 피란길에 오르는 바람에 백신 접종을 받지 못했다.
병원들이 공격받으면서 신생아 대상 접종은 거의 중단됐다.
압델-라흐만의 가족은 여러 대피소를 옮겨 다니다가 현재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 알발라의 대피소에서 지내고 있다.
압델-라흐만의 어머니 네빈은 아들이 소아마비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망연자실했다"라며 "계속되는 이동 때문에 우리 아들이 예방접종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수개월 전부터 전문가들은 보건 시스템이 붕괴한 가자지구에서 소아마비 발병 가능성을 경고해왔다.
WHO는 가자지구 내에서 마비 증상을 보이는 아이가 두 명 더 있으며, 확인을 위해 이들의 대변 표본을 요르단의 연구소로 보냈다고 밝혔다.
또 수백명이 증상은 없지만 소아마비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하수와 대부분 오염된 물을 통해 퍼지며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5세 미만 어린이가 주로 걸리지만 성인도 걸릴 수 있으며 영구적인 근육 쇠약, 마비 등의 증상을 겪을 수 있다.
WHO와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은 가자지구 전역에서 10세 미만을 대상으로 경구용 소아마비 신약인 백신 2형(nOPV2)을 투여하는 접종 계획을 수립했다.
유엔은 오는 31일부터 64만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할 계획이다. 이미 120만회분 이상의 백신이 가자지구에 도착했으며 앞으로 수 주간 40만회분이 더 공급될 예정이다.
그러나 유니세프는 가자지구 내 10세 미만 어린이 대부분에게 백신을 접종하려면 휴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니세프의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대변인인 아마르 아마르는 "계속되는 대피 명령으로 어린이와 그 가족들이 계속 이동하기 때문에 휴전 없이는 (백신 접종이) 불가능할 것"이라며 "의료팀이 어린이들에게 접근하기도 어려울 수 있다"라고 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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