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수장 제안 불구 '만장일치 채택'은 어려울 듯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29일(현지시간) 최근 극단적인 발언으로 논란이 된 이스라엘 극우 장관들에 대한 제재를 둘러싸고 극명한 입장차를 보였다.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비공식 외교장관회의에서 이스라엘 일부 장관들을 인권침해 제재 명단에 추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는 "회원국들에 팔레스타인과 관련해 용납될 수 없는 혐오 발언을 하고 국제법에 명백히 위반되며 전쟁범죄를 조장하는 제안을 하는 이스라엘 장관들을 제재할지 묻는 (공식) 절차를 개시했다"고 설명했다.
보렐 고위대표는 실명을 거론하진 않았으나 이스라엘의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과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 등 두 명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벤-그비르 장관은 하마스 정치지도자 암살로 중동 상황이 확전 기로에 서 있던 상황에서 지난 13일 동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이스라엘 명칭 성전산)을 찾아 기도하러 왔다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알아크사 사원은 이슬람의 3대 성지 중 하나로 종교적으로 민감한 장소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에서도 신성한 장소로 여기지만 사원 내에서 기도는 이슬람교도만 할 수 있도록 규정돼있다.
스모트리히 장관은 이달 초 이스라엘 인질들을 석방하기 위해서는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200만명을 굶어 죽게 놔두는 것이 정당화되고 도덕적일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보렐 고위대표는 앞서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두 장관의 행보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외교장관회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제재 채택을 위한 만장일치 합의 도출이 현재로선 쉽지 않아 보인다.
슬로베니아, 아일랜드, 스페인 등은 보렐 고위대표 제안을 지지한다고 밝힌 반면 독일, 헝가리는 반대하고 있다.
안토니오 타야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비현실적 제안"이라면서 제재 채택 시 역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회의는 당초 관례에 따라 EU 하반기 순회 의장국인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실무 준비 과정에서 브뤼셀로 바뀌었다.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지난달 의장기를 넘겨받자마자 '평화 임무'를 자임하며 러시아, 중국을 잇달아 방문하면서 EU 내부에서 헝가리 주최 회의 보이콧 움직임이 일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보렐 고위대표는 "회의를 주재하는 나의 결정"이라며 "헝가리가 밝힌 입장 일부는 EU의 공동 외교·안보 정책에 직접적으로 어긋나므로 본부(브뤼셀)에서 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씨야트로 페테르 헝가리 외무장관은 이날 회의에 참석하긴 했으나, 보렐 고위대표의 이스라엘 장관 제재 제안이 "무모하다"고 비난하는 등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EU는 30일 비공식 국방장관회의 역시 부다페스트 대신 브뤼셀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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