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송배전망→데이터센터→AI서비스'…과정마다 난관
하남시의 변전소 증설 불허에 '비상'…쌓이기만 하는 갈등
'전기 먹는 하마' AI데이터센터, 수도권 쏠림 속 주민은 난색
[※편집자 주: 지속가능한(sustainable) 사회를 위한 이야기들을 담아낸 '플랫폼S'입니다. 지속가능과 공존을 위한 테크의 방향성과 기후변화 대응, 사회적 갈등 조정 문제 등에 대한 국내외 이야기로 찾아갑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전기는 수도권에서 쓰는데 왜 우리 지역에 발전소, 변전소를?'
'데이터센터는 우리 지역에선 전자파로 건강 해칠 수 있으니 절대…'
서울 주민도, 원자력·화력 발전소 인근 주민도, 송·변전소 및 송전탑 설치 예정지 주민도 모두 인공지능(AI) 등 IT 관련 서비스를 사용한다. 특히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AI 서비스는 이제 시작이다.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건 머지않은 미래다.
AI 등 IT 서비스가 돌아가기 위한 장치는 데이터센터에 모여 있다. 데이터센터 가동을 위해선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반도체 등이 탑재한 장비가 돌아가게 하고, 이로 인해 발생한 열을 냉각장치로 식혀야 한다. 전기는 발전소에서 생산돼 송전탑, 변전소를 거쳐서 데이터센터로 들어온다.
여기서 언급된 시설은 각종 첨단 기술 서비스를 영위하는 최종 소비자들을 위한 셈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역과 주민이 기피하는 시설이다. 기피 시설을 떠안게 되는 지역은 경제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만큼 이런 시설들을 설치하려면 합리적인 의사소통 체계와 합당한 보상이 이뤄져야 할 텐데, 현실에선 난관이 많다. 갈등 조율이 원활하지 못하면 AI 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기반 생태계가 원활히 구축되기 어렵다.
◇ 빅테크도 AI전력 확보 '사활'…발전소 설치는 갈등 뒤엉킨 실타래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전력 확보는 '공룡' 빅테크들만의 고민이 아니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각국이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해 사활을 거는 문제가 됐다. 가뜩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주요국들이 에너지 수급 문제에 민감해하는 시점에 '생성 AI 붐'이 기름을 부은 셈이다. 골드만삭스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가운데 AI가 차지하는 비중이 2028년엔 19%에 이를 것으로 내다볼 정도다. 더구나 지난 5월 국회 입법조사처 발표 자료에 따르면 AI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전력은 기존 데이터센터의 6배에 달했다.
해외에선 빅테크들이 자체적으로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벌이고 있다. 태양광·수소 등 재생에너지원과 소형모듈원전(SMR), 에너지 저장시스템(ESS) 확보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향후 증가할 전력 수요에 대비하는 데 애쓰는 모습이다. 지역적으론 수도권과 반도체 클러스터 지역에서 전력 수요가 급증할 전망이다. 현재도 수도권에선 국내 전력 수요의 약 70%를 사용한다.
그런데 국내 주력 발전소들은 인구 밀집지역인 대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고 부지와 냉각수 확보에 유리한 해안가 지역에 주로 자리 잡고 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경제적·환경적 악영향을 우려해 발전소 건립을 반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상 등에서 합의점을 찾기도 한다. 국내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 삼척블루파워 1호기는 맹방해변에 침식 작용을 일으키고 지역의 관광적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등의 지적 속에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 '송·배전망 갈등' 갈수록 태산…반도체 클러스터 전력수급 비상
지방에 발전소가 지어지더라도 수도권으로 전력을 보내는 건 원활할까. 송·배전망 관리 및 확충에는 상당한 자금, 예산이 들어간다. 예산을 확보한다고 해도 지역사회의 반대로 설치에 걸림돌이 많다. 수도권의 반도체 클러스터와 데이터센터 등에 전기를 보내는 게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
지난달 21일 경기도 하남시가 동서울변전소 옥내화·증설 사업을 불허한 점은 최근 발생한 대표적인 갈등 사례다. 외부에 노출된 동서울변전소의 기존 전력 설비들을 신축 건물 안으로 이전하는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동해안에서 송전선로를 통해 수도권에 추가로 들어올 전기를 공급하려는 사업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이 주요 수혜 대상이다.
하남시는 전자파 유해성 우려 등으로 인한 주민 반대를 불허 사유로 들었다. 이에 한국전력은 전자파 유해성은 "흑색선전"이라며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까지 주민 우려 해소에 노력하겠다며 나섰다.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 송전선로를 추가 설치하는 것도 난관을 겪고 있다. 삼척 등의 일부 화력발전소들은 송전망 구축이 계획보다 지연되면서 발전이 중단됐다.
송전선로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회적 갈등은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다. 2005년 말 시작된 반대를 위한 싸움이 단일 국책사업으로는 최장기간 이어졌다. 송전탑은 완공됐지만, 지금도 갈등은 진행형이다.
◇ AI데이터센터, 지방 분산 쉽지 않은데…수도권 입지는 좁아져
전기의 수요처로 비중이 커 가는 데이터센터 설치를 둘러싸고도 갈등이 만만치 않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지난해 3월 발표 자료를 보면 데이터센터 입지의 60%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제출된 신설 계획에선 수도권 지역이 80% 이상을 차지해 쏠림 현상이 더욱 심하다. 그러나 수도권 내 신설은 점점 수월치 않은 모습이다. 송·배전망 등 전력 인프라가 제때 맞물리기 쉽지 않다. 전력 인프라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채 데이터센터만 지어지면 수도권 내 전력 수급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
더구나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를 우려해 반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건강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라는 전문가들이 많지만, 주민들의 우려는 여전하다. 물론 한적한 지방에 데이터센터를 지으면 이런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발전소 인근에 지으면 전력 수급이 더욱 편할 터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지을 경우 시스템을 운영할 IT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다. 해당 업체들이 부동산 투자를 겸하기 위해 수도권 데이터센터를 고수한다는 지적도 따른다. 이런 이유로 각종 인센티브가 제공된다고 해도 지방 분산 배치가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IT 업체들도 대도시권에서 추가로 송·배전망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커가고 있다. 해외에선 발전소에 전력망이 잘 갖춰진 점을 감안해 문 닫은 발전소에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는 IT 기업들도 생겼다.
◇ 갈등 불거지기 전 예방적 접근은…'상생협의체' 필요성도
이처럼 급속히 열리는 AI 시대를 뒷받침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는 많은 갈등이 따른다.
데이터센터와 함께 송·배전망이 제때 확충되지 않으면 산업 경쟁력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전기 이용 및 전기요금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가적으로 전력망 확충위원회를 설립해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 제정 논의도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공론화의 폭이 좁다.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은 "해당 사안별로 기업, 지자체, 주민 등 관련 주체들이 참여하는 상생협의체를 구성해 보상 방안을 논의하는 등 이해관계를 조절해야 한다"며 "갈등이 불거지기 전에 과학적 근거와 지역경제 편익, 주민 편의 등을 논의해가는 예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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