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대출정책 지적 쏟아지자…김병환 등판, 이복현 '제동'

입력 2024-09-06 14:45  

오락가락 대출정책 지적 쏟아지자…김병환 등판, 이복현 '제동'
"은행 책임감 가져야", "스스로 관리해야"…대혼란에 또 책임 전가
가계빚 긴급회견 열려…'정책실패' 인정없이 '은행자율' 또 강조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채새롬 기자 = 최근 이복현 금감원장의 은행 대출 정책과 관련한 오락가락한 발언들이 오히려 부동산 시장에 리스크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6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김 위원장은 가계부채와 관련해 '은행권 자율 관리' 방침을 강조했는데, 이 원장의 '관치 발언'이 도를 넘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금융위가 금감원에 대한 제동 걸기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의 브리핑 내용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최근 발언들과 충돌되는 양상도 보여 양 기관 간 '엇박자' 우려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이복현發 대출시장 혼란' 논란에 김병환 뒤늦게 수습
금융위원회가 이날 긴급 브리핑을 연 것은 당국의 '갈팡질팡' 규제가 대출 시장의 혼란을 가중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정부의 일관된 입장을 명확히 표명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다.
김병환 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가계부채를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정부의 기조는 확고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가 획일적인 기준을 정하면 국민 불편이 커질 수 있다며 고객을 가장 잘 아는 은행이 자율적으로 대출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최근 이 원장이 은행권의 주담대 금리 인상과 관련해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밝힌 것이나 대출 관리가 실수요는 제약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문한 것과는 다소 다른 '톤'이다.
이에 김 위원장은 "가계부채를 엄정하게 관리하겠다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이 원장이 발언한) 시장개입이고, 은행의 개별적 행위에 대해 관여하기보다는 자율적인 조치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느 부분이 강조되는지에 따라 메시지 충돌이나 혼선이 있어 보일 수 있지만 전체 흐름에서는 양 기관 인식 자체에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원장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들로 시장 혼란이 커진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자 이날 김병환 위원장이 수습을 위해 뒤늦게 등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금융당국의 압박에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일제히 높이면서 대출 실수요자까지 과도하게 피해를 본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이 원장이 다시 실수요자 보호를 역설하는 등 혼란스러운 메시지가 이어져 왔다.
이복현 원장이 지난달 25일 KBS에 출연해 "우리가 바란 건 (쉬운 금리 인상이 아닌) 포트폴리오 관리"라며 은행권에 압박 수위를 높인 이후 KB국민은행, 우리은행, 케이뱅크 등이 이달부터 1주택자의 수도권 주택 추가 구입 목적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제한하기로 했고, 삼성생명도 3일부터 기존 주택 보유자에 대한 수도권 주담대를 제한했다. 전세대출과 신용대출 한도 및 대상도 줄줄이 축소됐다.
은행들이 제각각 대출 정책을 달리 내놓으면서 오는 11월 입주를 시작하는 서울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단지 관련해서도 은행에 따라 같은 조건의 대출 여부가 달라지는 등 실수요자 사이 불만이 커졌다.
이 원장은 지난 4일에는 '가계대출 실수요자 및 전문가 현장간담회'를 열고 "대출 실수요까지 제약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해달라"며 달래기에 나섰지만, 이 같은 발언이 오히려 혼란을 가중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김 위원장이 전면에 나서며 이 원장의 돌출 발언과 행보에 대한 '제동'을 거는 모양새다. 앞으로 은행권에 지나친 '개입성 발언'을 자제하라는 취지의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 "오락가락 정책실패" 지적 인정안해…"은행이 관리 잘해야" 재차 강조
정부 가계대출 관리 강화 기조와 관련한 시장 혼선이 극심해지고 있지만 정부는 '정책 실패'라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최근의 이복현 원장의 발언 들 이전에도 정부는 특례보금자리론이나 디딤돌대출 등 정책대출 증가세를 묵인하고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 직전 돌연 두 달을 연기하는 등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와 관련 "정부가 상황에 맞는 정책조합을 하는 과정이었다"며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그게 문제"라고 답했다.
부동산 시장 경착륙이 우려되던 작년과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는 점, 가계대출 증가세 중 정책자금 비중이 높은 부분을 감안해 최근 정책 금리를 올린 점 등을 부연했다.
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 시기 연기와 관련해서도 "소상공인 채무 부담 완화 방침과 부동산 PF 시장 여건 등을 감안해 바람직한 정책 조합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며 정책 실기를 인정하지 않았다.
정부가 '은행권 자율적인 관리 조치' 전면에 내세우면서 가계부채와 관련한 책임을 은행권에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병환 위원장은 "정부가 획일적인 기준을 정할 경우 개별적·구체적 사정을 고려하기 어려워 국민 불편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주 사정을 가장 아는 은행들이 합리적인 방식으로 고객 불편을 잘 해소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은행들이 알아서 잘해야 한다'는 취지인데, 금융당국 수장 말 한마디에 대출 정책을 이리저리 수정해온 은행권은 또다시 당혹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 위원장은 은행에 책임을 전가한다는 비판과 관련한 질문에 "은행에 책임을 물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답했다.

이미 수도권 중심으로 불붙기 시작한 집값 상승세를 잡을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오락가락해온 정부 정책에 이미 정책 신뢰성이 상당 부분 훼손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차주들의 '패닉 바잉'도 다시 시작되는 모양새다.
가계부채가 계속 급증할 경우 추가 수단을 과감히 시행하겠다고 했지만,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강화 등은 전 정부 규제로 회귀하는 인상을 줄 수 있어 꺼내 들기 쉽지 않은 '카드'다. DSR 적용 범위 확대 및 DSR 한도 하향 조정 등이 우선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5대 은행의 지난 8월 말 가계대출 잔액은 725조3천642억원으로, 7월 말(715조7천383억원)보다 9조6천259억원 불었다. 이는 5대 은행에서 확인할 수 있는 2016년 1월 이후 시계열 가운데 가장 큰 월간 증가 폭이다.
5대 은행에서 확인할 수 있는 2016년 1월 이후 시계열 가운데 가장 큰 월간 증가 폭이다
sj9974@yna.co.kr, srch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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