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신선미 전재훈 기자 = "예전처럼 장을 보면 지출이 너무 커져 조금만 사거나 최대한 싼 걸 찾고 있어요."
추석 연휴를 열흘가량 앞둔 지난 6일 마트와 시장에서 만난 소비자들은 "장보기가 겁난다"며 물가 하락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 작년 추석과 비교해 과일과 한웃값은 내렸지만, 채소와 수산물 가격은 올랐다. 정부가 최근 농·축·수산물 성수품을 공급하고 할인 행사를 지원하는 등 물가 안정 대책을 내놨지만, 소비자들은 아직 가격 인하를 체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강북구 소재 전통시장의 한 채소가게에는 '오이 3개 5천원', '애호박 1개 3천원' 등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조사에서도 백다다기오이 소매가격은 상품 기준 세 개에 약 4천700원, 애호박은 한 개에 약 2천400원으로 각각 1년 전보다 24.7%, 19.8% 비싸다. 가격표를 본 소비자들은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니다", "안 오른 게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 채소가게는 배추에는 가격표도 붙여두지 않았다.
배추를 사러 나온 한 부부는 배추가 한 포기에 '1만5천원'이라는 상인의 말을 듣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한 푼이라도 싸게 파는 곳으로 '원정 장보기'를 다닌다는 소비자도 있었다.
이 시장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도봉구 농협 하나로마트 창동점에서 만난 소비자는 "이 계절엔 원래 배추가 금값"이라며 "동네 마트는 비싸서 일부러 농협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곳에선 배추를 한 포기에 약 7천원에 판매하고 있었지만, 이 소비자는 마음에 드는 상품이 없는지 한참을 매대에 머무르며 배추를 살펴봤다.
같은 마트의 과일 코너에서 만난 한 소비자는 배를 찾고 있다면서 "박스로 사는 것이 더 나을지, 이렇게 세 개씩 포장된 게 더 싼 건지 몰라서 한 개에 가격을 비교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마트에서 '미끼상품'으로 불리는 특가 상품으로 눈길을 돌리는 소비자도 눈에 띄었다.
양천구 한 대형마트를 찾은 한 70대 소비자는 꽃게를 제휴 카드로 구매하면 40% 할인해준다는 안내를 듣더니 손에 든 한우 국거리를 내려놓고 꽃게 코너로 갔다.
이 소비자는 100g에 882원인 꽃게를 1만4천원어치 들고선 "원래 고깃국을 만들까 했는데 꽃게가 행사 중이라 꽃게탕을 끓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양천구의 한 마트에서 장을 보던 60대 황모씨는 '배 4개에 1만원' 할인 행사장을 찾았다. 황씨는 "작년에는 과일이 비싸 거의 못 먹었는데 오늘 행사를 하길래 담았다"고 장바구니를 들어 보였다.
농협 하나로마트 창동점에서 만난 한 소비자는 과일 선물 세트 앞에서 한참 망설이더니 "네 세트만 사기로 했다"며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필요한 만큼만 살 생각"이라고 말했다.
양천구 대형마트의 한 판매원은 "선물 코너에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더 저렴한 게 없냐고 묻는다"며 "명절 직전에 오면 얼마까지 할인해줄 수 있냐고 묻는 손님도 있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고물가에 선물 세트는 대체로 가성비(가격 대비 품질) 상품이 인기"라면서 "특히 3만원 미만 선물 세트 매출이 작년 추석 사전 예약 기간과 비교해 50%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장사가 안된다고 걱정했다.
영등포구의 한 전통시장에서 45년간 옷과 이불 장사를 했다는 60대 윤모씨는 "한 달에 100만원도 팔지 못해 적자를 본 지 몇 달 됐다"고 말했다.
30년 동안 신발 가게를 운영해 온 한 상인은 한산한 시장 통로를 가리키며 "항상 이렇게 사람이 없다. 이제 시장에서 명절 대목은 남의 얘기"라고 했다.
양천구의 한 전통시장에서 반찬을 판매하는 상인은 "명절 연휴까지 시간이 좀 남아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절 분위기가 안 난 적이 있나 싶다"며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sun@yna.co.kr, kez@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