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미국 인플루언서가 선전에 가장 짭짤한 바보였다"

입력 2024-09-08 09:51  

"러시아에 미국 인플루언서가 선전에 가장 짭짤한 바보였다"
CNN, 美우파 SNS 스타들 러 선전도구 전락경위 조명
커넥션 보니 돈 대주고 사회분열 유도·우크라 비판 요구


(서울=연합뉴스) 김상훈 기자 = 미 대선에 개입하려는 러시아 측이 우익성향의 미 온라인 채널에 거액의 콘텐츠 제작비를 제공한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CNN 방송이 7일(현지시간) 우파 소셜미디어 스타들을 끌어들인 이 온라인 미디어 기업과 러시아의 커넥션을 집중 조명해 관심을 끈다.
미 법무부는 지난 4일 미 테네시주에 본사를 둔 우파 성향 미디어 기업 테닛 미디어에 불법적으로 자금을 지원한 혐의로 러시아 국영방송 RT 직원 2명을 기소했다.
이어 유튜브는 이튿날 테닛 미디어 등 우파 성향 4개 채널을 차단했다.
법무부 관계자에 따르면 RT 직원들은 유령회사를 통해 우익 미디어 기업가 로렌 첸이 운영하는 테닛 미디어에 1천만달러(약 133억원)를 지원하고, 미국의 정치적 분열을 증폭시키기 위한 온라인 영상을 제작하도록 했다.
기소장에는 러시아 측 자금을 받은 매체가 적시되지 않았지만, 세부 정보는 러시아 RT 프로듀서로부터 돈을 받은 기업이 테닛 미디어라는 것을 뒷받침한다.
지난해 출범한 테닛 미디어는 스스로를 '서구의 정치 및 문화 문제에 초점을 맞춘 이단적 해설가 네트워크"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이 채널에서 활동하는 6명의 해설가는 이미 미국 주류 매체에서 경력을 쌓은 뒤 보수 성향의 미디어 생태계에서 인플루언서로 존재감 키웠다.
테닛 미디어 해설자들이 확보한 유튜브 구독자는 600만명이 조금 넘지만, 우익 세계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방송에서 검은색 비니를 쓰는 것으로 유명한 팀 풀은 자신의 쇼에 극단주의적 극우 인사들을 초대하기도 했고, 올해 초에는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또 유튜브 구독자 240만명을 거느린 우익 단체 '터닝 포인트 USA'의 크리에이티브 책임자인 베니 존슨은 지난 2월 테닛 플랫폼에서 트럼프 후보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를 인터뷰했다.
테닛 미디어에서 독립적으로 쇼를 진행하거나 자체 제작 콘텐츠를 교차 게시하기도 한 인플루언서들의 계약 형태는 다양하다.
일부 소셜미디어 스타는 영상 제작비로 매달 40만달러(약 5억4천만원)를 받기도 하고, 다른 인플루언서는 계약금으로 10만달러(약 1억4천만원)를 받기도 했다.
법무부 기소장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방송 RT는 해설자들의 팬 네트워크가 광범위한 이 회사에 자금을 지원하고 미국 사회의 분열을 유도하는 서사를 유포하게 했다.

특히 러시아 측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지명을 촉진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성소수자(LGBTQ) 운동을 비판하기를 원했다.
실제로 테닛 미디어의 해설자들은 이런 러시아 측의 의도대로 행동했다.
폴은 지난달 생방송에서 "우크라이나는 이 나라의 적이다. 우크라이나는 민주당의 자금 지원을 받는 우리의 적이다. 다시 강조하자면, 지금 우리나라의 큰 적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다"라고 주장했다.
또 기소장에는 러시아 자금 제공자들이 지난 3월 테닛의 공동 창립자에게 모스크바 외곽 콘서트장에서 벌어진 테러와 관련 우크라이나와 미국을 비난하라고 직접 요청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당시 국제 테러 조직인 이슬람국가(ISIS)가 테러의 배후를 자처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학살에 관여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기소장에는 이후 창립자가 러시아의 지시에 관해 해설자에게 물어보겠다고 답했고, 다음 날 '3번 해설자'가 "기꺼이 취재하겠다"고 답변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실제로 해설자 존슨은 자신의 쇼에서 "우크라이나가 테러에 관련됐을 수 있다"고 말했고, 미국이 사전에 테러 가능성을 경고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너무 뻔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존슨이 기소장에 언급된 '3번 해설자'인지 그가 우연히 이 요청에 맞는 영상을 게시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존슨은 러시아 자금 지원 자체를 부인했다.
러시아 정부는 오랫동안 미국인을 이용해 허위 정보를 유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작전을 수행해 왔으며, 그 목적은 미국 내 분열 조장을 통한 러시아 이익 증진이었다고 CNN은 소개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러시아는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이 제공하는 익명성을 활용해 미국의 우파와 좌파 사회 운동에 침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2016년 미국 대선 이후 미 의회와 연방 조사에서 모스크바가 미국인을 이용해 시위를 유발하는 사례들이 있었는데, 이를 냉전 시기 구소련에서는 '유용한 바보'로 부르기도 했다.
이와 관련 스탠퍼드 인터넷 관측소의 연구 관리자 출신으로 '보이지 않는 통치자'를 저술한 르네 디레스타는 "풍부한 자원을 가진 국가급 행위자들은 공개적인 것부터 비밀스러운 것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방송과 소셜미디어를 모두 이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시점에서 러시아는 여러 가지 전략을 동시에 실행하는데, 비용이 더 들고 효과가 떨어지는 방식이 나오면 다른 전략으로 바꾼다"며 "현재 상황은 본질적으로 전통적인 위장 미디어 전략인데, 이전의 언론인이 아닌 인플루언서가 가장 유용한 바보로 활용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meola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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