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실권자의 미래비전 네옴시티, 비위 임원들로 '복마전'

입력 2024-09-12 16:33  

사우디 실권자의 미래비전 네옴시티, 비위 임원들로 '복마전'
WSJ, 관련 통화 녹음 파일 등 입수해 보도


(서울=연합뉴스) 김상훈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미래 신도시 '네옴'(NEOM) 건설 프로젝트에 비위 전력을 가진 임원들이 몰려들면서 사건·사고와 잡음이 끊이지 않는 '복마전'(伏魔殿)이 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네옴시티는 빈살만 왕세자가 2017년 발표한 탈(脫)탄소 국가 발전 계획인 '비전 2030'의 핵심 사업으로, 홍해 인근 사막및 산악지대에 서울 44배 넓이(2만6천500㎢)의 친환경 지능형도시와 첨단산업단지,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이 열릴 산악 관광단지 등을 조상하는 사업이다.
특히 사우디는 수소와 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로만 가동되는 길이 170㎞의 거대한 미래형 도시 '더 라인'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에는 전 세계 유수의 기업과 정부 기관 등에 몸담았던 인력들이 모여들었는데, 불행하게도 네옴의 주요 프로젝트를 담당한 임원들이 비위로 잡음을 내고 있고 건설 현장에서는 사망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 3명이 잇따라 사망하자 네옴 측은 상황 관리를 위해 지난여름 임원진을 소집해 대책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회의에 참석한 임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개선책을 찾기보다는 '성가신 회의를 유발한 근로자들'을 경멸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WSJ이 입수한 통화 녹음 파일에 따르면 할리우드에서 임원을 지내고 현재 네옴에서 미디어 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웨인 보그는 "사람들이 많이 죽으니까 일요일 밤에 회의해야 한다"고 불만을 털어놓으면서, 인도에서 온 근로자들을 '빌어먹을 멍청이들'이라고 칭했고 "그래서 백인들의 서열이 맨 위에 있는 것"이라는 인종차별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 호주의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미 미디어그룹 폭스를 거쳐 네옴 프로젝트에 들어온 보그는 입사 초기 흑인 여성 부하 직원을 경멸적인 말로 불러 인사 담당부서에 소환된 적도 있다.
또 그는 여성 부하 직원에게 "보고 싶다"거나 "너의 엉덩이가 비욘세보다 낫다"는 등 성희롱 발언도 했다고 전현직 직원들이 말했다.
신문은 전현직 임직원의 증언과 문서, 이메일, 녹음파일 등을 검토한 결과, 네옴 프로젝트가 과거 직장에서 비위를 저지른 임원들을 끌어들이는 프로젝트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미디어 부문 책임자인 보그의 인종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발언 이외에 다른 최고 경영자는 본국에서 부패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고 아직도 조사받고 있으며, 횡령 혐의로 조사받는 임원들도 다수 있다.
빈살만 왕세자가 지난 2018년 네옴 프로젝트 최고경영자(CEO)로 고용한 나드미 알나스르는 직원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까다로운 경영 스타일로 언론보도에 오르내렸다.
WSJ이 확인한 녹음 파일에 따르면 알나스르 CEO는 한 회의에서 "나는 모든 사람을 노예처럼 몰아붙인다"고 했다.
특히 직원 채용 담당자와 전직 직원들에 따르면 알나스르 CEO가 직원 숙소를 사우디 북서쪽에 있는 외딴 사막지대로 옮기기로 결정하면서, 유능한 인재들에게 이 프로젝트의 매력이 떨어졌다고 한다.
알나스르의 결정으로 10만명이 넘는 화이트칼라 근로자와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도시에서 100마일(약 160㎞) 떨어진 곳의 트레일러에서 지내야 했다. 음주가 금지된 이곳에는 다른 오락거리도 없었다고 한다.
네옴 프로젝트에는 제너럴일렉트릭(GE), 아마존, 시스코 시스템즈 등 거대 기업 출신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을 유인한 것은 최고위급 지도자의 경우 110만달러(약 14억원)에 달하는 급여와 특정 국가에서 산업과 회사를 만들어낼 기회 등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열정에 사로잡힌 빈살만 왕세자가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통상 '나쁜 행동'으로 분류되는 행동을 용인하면서 비위 전력이 있는 임원들이 네옴에 몰려들게 됐다는 게 전직 직원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더 라인' 프로젝트 개발을 주도한 안토니 비베스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청 직원 출신으로, 4년간 친구에게 실제 일하지 않고도 16만5천달러(약 2억2천만원) 상당의 월급을 받는 '노 쇼(No show) 일자리'를 제공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네옴 내부에서는 그런 비베스를 축출하려 했고 결국 비베스는 스스로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빈살만 왕세자가 알나스르 대표에게 비베스를 다시 설득해 데려오라고 지시한 뒤 비베스는 네옴으로 돌아왔다. 빈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내에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과거 전력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네옴이 2020년에 찍은 '가장 밝은 마음'이라는 영상에는 노벨상 재단과 관계된 병원의 CEO 자리를 박차고 나온 네덜란드인 멜빈 샘섬과 하바드 석사학위를 가진 말리하 하시미 등 2명의 고위 임원이 등장한다.
이들은 네옴의 의료 시스템 구축 업무를 담당했는데, 전현직 직원들에 따르면 이들은 복제약 센터 개발과 관련해 지난 2020년 하시미의 친척 중 한명이 설립한 컨설팅 회사에 수의계약으로 수십만달러 상당의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을 따낸 미 보스턴 소재 미리어드 컨설팅은 설립된 지 1년밖에 안 된 회사인 데다 직원 수도 몇 명에 불과하며, 이 가운데는 샘솜의 아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듬해 봄 네옴 경영진이 이 계약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은 샘솜은 곧바로 공항으로 간 뒤 차 열쇠를 꽂아둔 채로 해외로 도주했다는 게 전현직 관리들의 전언이다.
meola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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