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태종 특파원 =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테크 기업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는 A씨. 그는 올해로 미국에 온 지 23년이 됐다.
30대 중반이었던 나이도 60대를 바라보게 됐다.
우연한 기회에 오게 된 미국, 잠시 생각을 뒤로 돌려보면 20여년의 세월이 때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한다.
보스턴에 첫발을 내디딘 후 정착한다고 정신이 없었는데, 어느새 몸은 대륙을 횡단하며 비행기로만 5시간 넘게 걸리는 실리콘밸리까지 왔다고 했다.
영어가 짧아 회의가 있는 날이면 항상 마음을 졸여야 했던 지난 시간. 미국에서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니며 해고의 칼날을 피해야 했던 순간들.
어떻게 버텼을까, 간담이 서늘한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미국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B씨. 60대 중반에 접어드는 그는 미국에 온 지 30년이 넘었다. 박사 학위를 목표로 왔던 미국에서 이처럼 오랫동안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엔지니어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연봉의 미 대학교수들. 사회적으로 높은 대우를 받는 한국의 동료 교수들이 부러웠던 적은 한두 번이 아니다.
60세 안팎의 A씨와 B씨. 이들이 공통으로 얘기하는 건 지금 스스로를 보면 '미국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에 잘 정착해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에 있는 또래 친구나 지인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든다. 친구들은 이미 직장을 잃었거나 직장을 떠나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지만 자신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A씨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언제 해고 통보를 받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해고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애들은 이미 다 직장에 다니고 있고 젊은 시절부터 쌓아놓은 연금도 두둑하다.
무엇보다 또 다른 회사에 취업할 수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몇 년 더 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B씨는 이미 대학으로부터 '테뉴어'(tenure·종신 재직)를 받았다. 자신이 스스로 사표를 던질 때까지 평생 교수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10년은 더 일할 생각을 한다"며 "젊을 때는 사회적으로 더 높은 대우를 받는 한국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는데 이제야 미국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물론, 미국 기업들의 해고는 서슬 퍼렇다. 한국과 달리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에서는 언제든 해고 통지가 날아들 수 있다.
이메일로 날아드는 해고 통지서는 그 순간부터 모든 회사 시스템의 접속을 차단한다. 수개월 치 급여를 주는 기업도 드물게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기껏해야 한두 달 정도의 월급만 나올 뿐이다.
또 다른 자리를 알아보는 것이 쉽지 않을 때도 많다. 예년과 달리 요즘같이 기업들이 저마다 인력 구조조정에 나설 때는 더더욱 그렇다.
수십군데, 수백군데 기업에 이력서를 넣어도 답장 하나 오지 않는 때도 있다.
그래도 딱 못 박은 '정년'은 없다. 60세 정년이 기본인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60세를 넘어도 능력을 인정받으면 계속 근무할 수 있다.
직장인으로서 사회적 은퇴는 스스로 결정할 뿐 회사가 결정하지 않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에서 50대는 물론이고, A씨처럼 60대 안팎의 엔지니어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스타트업이나 심지어 식당 등에서는 60대를 훌쩍 넘긴 '어르신'들도 눈에 띈다.
한국은 60세 이상이 많아지는 고령화 사회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나이가 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자리를 잃는 것은 이제 사회적으로도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때론 나이가 숫자에 불과할 수도 있다.
taejong7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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