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비정규군' 헤즈볼라 굴욕…'트로이 목마' 연쇄폭발에 휘청

입력 2024-09-19 17:38   수정 2024-09-19 18:34

'최강 비정규군' 헤즈볼라 굴욕…'트로이 목마' 연쇄폭발에 휘청
휴대전화·노트북·지문인식기·태양전지 등도 잇따라 터져
통신보안 위해 삐삐 쓰다가 허찔려…"취약한 실상 드러나" 내부 비판도
언제 어디서 누가 공격받을지 예측불허 "공포감에 또다른 위기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레베논에서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무선호출기(삐삐)와 무전기(워키토키) 동시다발 폭발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데 이어 휴대전화, 노트북, 태양전지 등 다양한 전자기기가 터졌다는 보고가 잇따랐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각종 기기가 '죽음의 무기'로 돌변하면서 헤즈볼라 조직원은 물론 민간인들까지 속수무책으로 공격당하자 '세계 최강의 비정규군'으로 불리며 전력을 자랑하던 헤즈볼라의 취약한 실상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알자지라 방송,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수도 베이루트 외곽 등 레바논 전역에서 휴대용 무전기가 연쇄 폭발하면서 최소 20명이 숨지고 450명 이상이 다쳤다고 레바논 보건부가 밝혔다.
전날인 17일 베이루트 교외와 이스라엘 접경지인 남부, 동부 베카벨리 등 헤즈볼라 거점을 중심으로 삐삐 수천 대가 동시다발로 터져 어린이 2명을 포함해 12명이 숨지고 2천800여명이 다친 지 하루 만에 또다시 폭발물 공격이 레바논을 뒤흔들었다.
이틀째인 이날은 무전기 외에 휴대전화, 노트북, 지문인식장치 등 다양한 전자기기가 폭발했다고 알자지라 통신이 보도했다.
차량도 여러 대 폭발했는데 자동차 자체가 터진 것인지 아니면 내부에 있던 다른 장치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폭발한 기기는 대부분 통신용 장치이지만 태양광 패널 등 다른 기기가 폭발했다는 보고도 잇따랐다.
로이터는 레바논 국영 통신사를 인용해 베이루트 곳곳과 레바논 남부 도시 티레 등에서 태양전지가 폭발해 최소 소녀 1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WP는 현지 민방위 발표를 인용해 이날 일련의 폭발로 남부 나바티에 주에서만 주택과 상점 60곳이 영향을 받는 등 전국 곳곳에서 주택, 상점, 차량이 불에 타거나 손상됐다고 전했다.
이 같은 대규모 폭발물 공격은 레바논 전역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고, 막강한 전력을 바탕으로 사실상 집권 세력에 가까운 영향력을 행사해온 헤즈볼라에 굴욕적인 타격을 안겼다.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는 1982년 레바논 전쟁 당시 남부를 점령한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해 현지 강경파 성직자들에 의해 창설된 조직으로 반이스라엘 무장 투쟁과 2006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거치며 군사·정치적 역량을 크게 키웠다.
고도로 훈련된 정예병에 이스라엘 방공망을 약화할 수 있는 대량의 공습 수단을 보유해 '세계에서 가장 잘 무장된 비국가 행위자'로 불렸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헤즈볼라의 병력이 정규군 3만명에 예비군 2만명 등 5만명에 이르며 로켓과 미사일 비축량도 12만∼20만발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러한 전력을 자랑하던 헤즈볼라가 통신보안 강화 명목으로 적극적으로 도입한 무선호출기 등 전자기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기습당하면서 취약한 실상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헤즈볼라 상황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를 두고 (헤즈볼라) 내부적으로 커다란 질문이 나오고 있다"며 "이번 공격은 헤즈볼라가 실제로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냈다"고 FT에 말했다.
이스라엘의 소행으로 여겨지는 이번 공격은 헤즈볼라 조직원은 물론 민간인들까지 대상으로 할 뿐만 아니라 비슷한 공격이 언제 어디서 또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타격이 더 클 전망이다.
17일 폭발한 삐삐를 소지했던 피해자 중에는 헤즈볼라의 전투원뿐만 아니라 정당조직 간부, 하급당원 등 민간인에 가까운 '사복 조직원'들도 다수 포함돼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헤즈볼라와 무관한 본업을 갖고 있으며 이 때문에 다수 민간인이 폭발 당시 영향권에 들었다고 FT는 전했다.
보안·정치 분석가인 엘리야 마그니에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와 (레바논)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알자지라도 이번 공격이 헤즈볼라의 입지를 뒤흔드는 동시에 레바논 국민들 사이에 공포와 음모론을 초래하는 '심리전'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특히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대원들이 소지한 통신기기를 동시다발로 터뜨리며 첩보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기술력을 과시함에 따라 레바논 국민들이 느낄 공포감은 갈수록 커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베이루트의 데이터분석가 랄프 베이둔은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역량이라면 이번에 공격받은 (헤즈볼라) 조직원의 이름과 위치도 알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이둔은 "(이스라엘은) 하늘에서 내려다보거나 도청을 통해, 또는 도로·병원 감시카메라 해킹 등으로 병원을 드나드는 차량을 손쉽게 감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보 분석가 함지 아타르는 이번 공격을 두고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에 "이것보다 더 큰 해를 가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군 장교 출신의 폭발물 처리 전문가 크리스 헌터도 이스라엘이 "전 세계 적대 세력을 향해 '다음 표적은 네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공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며 "이런 종류의 메시지는 매우 강력하다"고 했다.
inishmor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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