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8살 때 한 쪽씩 시력 잃어…한국서 근무 후 최근 美 본사로 발령
"장애인에 필요한 서비스 개발 꿈"…'나는 꿈을 코딩합니다' 출간
(마운틴뷰[미 캘리포니아주]=연합뉴스) 김태종 특파원 = "나와 같은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앱과 같은 서비스(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꿈입니다. 기회가 되면 창업도 해보고 싶구요"
구글에서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서인호(28) 씨.
지난 20일(현지시간) 구글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서 만난 서 씨는 미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자신의 꿈에 대해 이렇게 자신 있게 말했다.
2022년 1월 구글코리아에 개발자로 입사한 서 씨는 최근 구글 본사로 발령받았다. 23일부터 출근을 위해 추석 연휴이던 지난 16일 미국에 왔다.
서 씨는 5살 때 녹내장 합병증으로 한쪽 눈 시력을 잃었다. 그리고 3년 뒤 다시 다른 쪽 시력을 잃어 세상을 볼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읽어버린 시력은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꿈을 심어줬다.
서울맹학교에서의 갇혀 있는 듯한 초중고 생활은 서 씨로 하여금 공부의 의지를 다지게 했고, 그는 유명 사립대를 졸업했다.
앞을 볼 수 없는 까닭에 서 씨는 컴퓨터 모니터를 직접 보면서 코딩하는 다른 개발자들과 달리 소리를 듣고 코딩한다.
모든 텍스트를 음성으로 바꿔주는 소프트웨어 '스크린 리더'는 서 씨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그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는 속도가 느려 그만큼 시간 투자를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그래도 음성을 다 들어야 하기 때문에 눈으로 훑으면서 놓치는 오류를 잡아낼 수 있다"며 자신만의 강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첫 시작은 엔지니어는 아니었다.
서 씨는 "문과로 대학에 갔는데, 당시 문과생도 파이선(프로그래밍 언어) 과목이 필수였다"며 "억지로 들은 수업에 흥미를 갖게 될 지 몰랐다"고 돌아봤다.
그리고 그 흥미에 이끌려 컴퓨터 사이언스를 복수 전공으로 공부했다.
구글코리아에 입사했던 2022년 1월은 챗GPT가 세상에 나오기 10개월 전이었다. 당시에는 자신도 "AI보다 서비스 분야의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심이 많았다.
그랬던 것이 챗GPT 열풍으로 AI에 관심이 급증하고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연스럽게 AI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서 씨는 "AI 개발에 몸담으면서 AI가 나와 같은 시각장애인한테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은 볼 수 없지만 챗GPT가 설명해 주고, 카메라를 갖다 대면 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준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도전에 나선 서 씨는 기대와 함께 걱정도 적지 않다.
당장의 일상생활과 앞으로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체력이 잘 받쳐줄까, 낯선 곳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등 하루에도 수십번씩 생각하게 된다.
그는 "다들 오고 싶어 하고 (구글 본사로 간다고) 축하도 많이 받았는데 나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며 "서울은 익숙해져 지팡이 하나로 다닐 수 있지만 여기는 거리에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대학교 2학년 때이던 2017년 인디애나주에서 교환학생으로 미국 생활 경험이 있지만 그때와는 다른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당시에는 기숙사에서 지내고 캠퍼스 내에서 생활하다 보니 큰 어려움이 없었다"면서 "그런데 여기서는 나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니 당장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부터 걱정"이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AI 개발자로서 평소 간직해 온 꿈은 자신을 일으켜 세운다.
첫 번째로 장애인이 할 수 있는 비디오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서 씨는 "장애인들도 오락 문화가 필요한데 사실 없다시피 하다. 특히, 시각장애인들도 게임을 매우 하고 싶어 하는데 볼 수 없어서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게임 속 정보를 눈이 아니라, 소리로 표현하고 텍스트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며 "장애인들이 필요로 하는, 그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것부터 개발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서 씨는 최근 자신의 얘기를 담은 책 '나는 꿈을 코딩합니다'도 출간했다.
어린 시절 시력을 잃었지만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익히고 한계와 편견에 싸우며 현재 엔지니어로 성장하기까지의 얘기를 담았다.
taejong7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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