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백악관 건너편 '모조 백악관'…"결단의 책상 중압감 느껴보라"

입력 2024-09-22 07:28   수정 2024-09-23 10:00

[르포] 백악관 건너편 '모조 백악관'…"결단의 책상 중압감 느껴보라"
개관 前 가본 '피플스하우스'…링컨 분장한 배우 "나 때 백악관은 말야~"
권력작동 현장 시민들이 체험하게 하는 민주주의 교육장 콘셉트으로 건립



(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미국 수도 워싱턴 D.C. 펜실베이니아 애브뉴 '1600번지'에 위치한 백악관에서 한블록 떨어진 '1700번지'에 '모조 백악관'이 생겼다.
오는 23일(현지시간) 정식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피플스하우스'(The People's House·국민의집) 이야기다.
기자는 21일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와 내각 회의실 등 집무 공간을 실제 환경 그대로 구현해 놓은 피플스하우스 내부를 정식 개관에 앞서 취재하는 기회를 얻었다.
대기업 후원금을 포함한 민간 기금 8천500만 달러(1천136억원)를 들여 백악관역사협회 주도로 설립된 이곳은 시민들이 대통령이 평소 업무를 보는 '결단의 책상'(resolute desk)과 정치와 외교의 공간인 오벌오피스 소파 모조품에 직접 앉아 볼 수 있게 꾸며졌다.



'모조 국빈만찬장'은 방문객이 테이블에 앉아, 당대 미국 정상급 아티스트들의 국빈 만찬장 공연 영상을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즐길 수 있게끔 구현되어 있다. 내부에 설치된 미니 영화관에서는 역대 대통령들의 백악관 생활 등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고, 미국 대통령 전용차 '비스트'(Beast)에서부터 대통령의 반려동물 등을 소개하는 영상물도 마련돼 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에이브러햄 링컨(1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25대), 프랭클린 루스벨트(32대) 등 역대 대통령으로 분장한 배우들이 실제 그 대통령으로 '빙의'해 정식 개장에 앞서 초청된 방문객들과 대화하는 모습이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에게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어떻게 예상하느냐고 기자가 묻자 "많은 사람들이 (투표용지에 새겨진 후보 이름 옆에 기표하는 대신) 내 이름을 직접 써넣었으면 좋겠다"고 익살스럽게 답했다.

그는 기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시어도어 루스벨트 재임 중의 일로, 한국인에게는 일본의 식민 지배와 연결되는 쓰라린 기억인 '가쓰라-테프트 밀약'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또 국빈 만찬장에서 만난 '링컨'에게 '당신 재임 때와 비교하면 만찬장이 어떠냐'고 묻자 "나 때는 만찬장이 (현재 규모보다) 작았다"며 지난 160여년 사이 이뤄진 백악관의 규모 확장에 대해 설명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에도 작지 않은 매니아층을 형성한 미국의 백악관 소재 정치 드라마 '웨스트윙'(West Wing·1999∼2006년 NBC에서 방영)에서 미국 대통령 '제드 바틀렛'으로 분한 마틴 쉰이 현장에서 방문객들과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기자는 그 역시 '마틴 쉰'으로 분장한 다른 배우인가 싶었으나 대화를 나누고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가 '진짜'임을 알게 됐다.
피플스하우스의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는 마틴 쉰은 "이곳은 사람들이 미국의 역사, 특히 지난 250년간 백악관과 백악관에 살았던 사람들(역대 대통령과 그 가족)의 역사를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며 "이곳은 '국민들의 집'(피플스하우스)이기 때문에 입장료도 '무료'이고 누구나 환영"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피플스하우스 개관 축하 행사에서 환영사를 한 퍼스트레이디 질 바이든 여사는 "'펜실베이니아 애브뉴 1700번지'(피플스하우스의 주소)는 백악관 집무실의 정확한 복사판"이라며 "여러분들은 '결단의 책상'에 앉은 대통령이 느끼는 중압감을 체험할 수 있고, 각료회의의 집중적인 심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플스하우스를 참관하며 백악관을 직접 견학하고 싶어 하는 수많은 내·외국인을 다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머리를 잘 썼다'는 생각과 함께, 한국도 대통령 집무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체험시설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미국보다 짧은 헌정사 속에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에 따른 대통령 하야, 군사 쿠데타와 탄핵 등 미국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두루 겪은 한국에서 이런 시설을 만들고, 각 대통령 관련 전시물이나 사진 등을 두는 일이 미국보다 더 복잡하고 논쟁적이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백악관 체험 교육장의 이름을 '국민의집'으로 정한 그 '아이디어'만큼은 꼭 공유하고 싶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우리 헌법 1조 2항을 그 장소를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시설이 있다면 좋겠다 싶어서다.


jhc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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