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간 피비린내 나게 싸웠다…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질긴 악연

입력 2024-09-24 13:13   수정 2024-09-24 13:43

40여년간 피비린내 나게 싸웠다…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질긴 악연
헤즈볼라, 1980년대 초 '대이스라엘 투쟁' 기치로 탄생
자살폭탄 테러-요인 암살 주고받아…2006년에는 전쟁도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의 전면전 위기가 고조되면서 40여년간 양측이 이어온 질긴 악연에 관심이 쏠린다.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는 1980년대 초반 레바논 전쟁 당시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해 창설된 조직이다.
이스라엘은 당시 레바논 베이루트에 거점을 두고 자국에 테러를 가하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축출하겠다며 1982년 6월 내전 중이던 레바논을 침공했고, 이에 현지 강경파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대(對)이스라엘 무장투쟁을 시작한 것이 헤즈볼라의 모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이 이후 40여년간 무력 충돌을 계속해왔다고 23일(현지시간) 되짚었다.
양측은 전쟁으로 직접 충돌한 것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그림자 전쟁을 벌이며 피로 얼룩진 역사를 이어왔다.
헤즈볼라가 가장 초기에 이스라엘에 일격을 가한 사건은 1982년 11월에 있었다.
이스라엘이 PLO를 레바논에서 철수시키며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이던 때, 레바논 남부 해안 도시 티레에 있던 이스라엘 국내정보기관 신베트 본부가 폭발해 91명이 사망했다.
현지 당국은 가스 누출로 인한 폭발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실제로는 레바논 남부 시아파 무장 이슬람주의자들이 조직한 최초의 자살 차량폭탄 테러였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당시 폭발의 배후 세력들이 시아파 맹주인 이란의 지원을 받아 이듬해 헤즈볼라를 창설했다.
헤즈볼라는 이후 자살폭탄 테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악명을 떨쳤다.
1983년 4월 베이루트 주재 미국 대사관을 공격한 데 이어 같은 해 10월 베이루트의 미 해병대 막사를 겨냥한 차량 자살폭탄 테러로 350여명을 살해했다. 그 한 달 뒤에는 티레의 신베트 본부를 다시 공격해 이스라엘인 23명과 레바논 수감자 32명 등 약 60명을 숨지게 했다.
헤즈볼라는 1990년 레바논 내전이 끝난 뒤에도 대(對)이스라엘 저항을 이유로 무장을 해제하지 않았고 이후 레바논 국내 정치에 참여하며 세력을 크게 키웠다.

이스라엘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1980년대까지는 정보 부족으로 헤즈볼라의 테러 계획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나 1992년 2월 레바논 남부를 공습해 헤즈볼라 수장이던 아바스 알무사위를 사살하는 등 토벌에 나섰다.
헤즈볼라 조직이 커지고 이를 차단하려는 이스라엘의 작전망도 함께 넓어지면서 양측의 전쟁은 남미로 번질 정도로 전 세계를 무대로 삼게 된다.
알무사위가 사망한 한 달 뒤 주아르헨티나 이스라엘 대사관을 겨냥한 폭탄테러로 이스라엘인 30명이 사망했다. 1994년에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유대인 커뮤니티센터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일어나 85명이 숨졌다. 수사관들은 두 사건의 배후를 헤즈볼라로 지목했다.
당시 남미에는 레바논 출신의 시아파 이민자들이 많았으며 헤즈볼라는 이를 토대로 다양한 불법·합법 활동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갈등은 2006년 7월 전면전으로 한차례 정점을 찍는다.
당시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사상자 10여명이 나오고 이스라엘군 병사 2명이 납치되자 이스라엘군이 이들을 구출하겠다며 레바논을 침공했다.
양측은 2006년 7월 12일부터 8월 14일까지 34일 동안 전면전을 치렀다. 유엔의 중재로 끝난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에서 160여명, 레바논에서 1천여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된다.
이스라엘은 당시 전쟁에서 헤즈볼라의 게릴라전에 고전하며 인질 구출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에 비해 헤즈볼라는 압도적인 전력을 지닌 이스라엘을 효과적으로 막아내면서 이후 군사·정치적으로 역량을 크게 키우게 된다.
헤즈볼라는 남미는 물론 유럽, 북미 등에서 각종 사업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전 세계를 무대로 이스라엘을 겨냥한 테러를 계획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주요 인사 암살로 맞대응했다.
2008년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협력해 원격조종 폭탄을 이용,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있던 헤즈볼라 지휘관 이마드 무그니예를 암살했다. 무그니예는 1985년 TWA 여객기 납치사건과 1992년 아르헨티나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폭탄공격 등 해외 작전을 주도한 인물이다.
무그니예의 아들도 2015년 이스라엘군의 시리아 골란고원 공습으로 사망했다.

2006년 전쟁 이후 수시로 로켓 공격과 공습을 주고받으며 준전시 상태를 이어오던 양측의 분쟁은 지난해 10월7일 일어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가자지구 전쟁으로 또 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
헤즈볼라는 가자 전쟁 발발 직후부터 하마스를 지원한다며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했고, 이스라엘도 보복 공격을 가하며 양측의 충돌이 격화했다.
특히 지난 7월 이스라엘군 표적 공습으로 헤즈볼라 최고위 지휘관 푸아드 슈크르가 사망한 데 이어 지난 17 ∼18일 무선호출기(일명 삐삐)와 무전기 등 통신기기 수천대가 동시다발로 폭발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양측은 확전 갈림길에 섰다.
지난 20일에는 헤즈볼라 특수작전부대 라드완의 지휘관인 이브라힘 아킬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했다.
가디언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수십년간 대립하며 승패를 주고받았으나 최근에는 힘의 균형추가 이스라엘에 유리한 쪽으로 기울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특히 이스라엘이 삐삐·무전기 폭발사건으로 "오랜 비밀 투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것으로 여겨진다"며 "또한 헤즈볼라 고위 군사 지휘관을 겨냥한 일련의 암살은 (이스라엘이) 시의적절하고 정확한 헤즈볼라 내부 정보를 파악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inishmore@yna.co.kr
이스라엘 융단폭격에 레바논 '불바다'…"떠나라" 섬뜩한 경고/ 연합뉴스 (Yonhapnews)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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