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 보낸 헤즈볼라…'자제냐 보복이냐' 딜레마 빠진 이란

입력 2024-09-27 11:05   수정 2024-09-27 12:14

SOS 보낸 헤즈볼라…'자제냐 보복이냐' 딜레마 빠진 이란
이스라엘 공격 시 미국 군사 대응 우려…이란 체제 위협 가능성
방관 시 중동지역 동맹 약화·영향력 위축…내부 강경파 반발도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무력 공방 격화로 전면전 위기가 고조되면서 이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군사적 개입에 나설 경우 이스라엘의 최우방인 미국의 군사 대응을 유발해 이란이 직접 공격받는 안보 위협에 직면할 수 있어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내부 보수 강경파와 동맹들의 반발을 사고 이는 역내 영향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어 이란의 딜레마가 커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 고심 깊은 이란 지도부…페제시키안 "평화 추구"
이런 고심은 이란 지도부의 행보에서 엿볼 수 있다.
26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지난 24일 미국 뉴욕 유엔총회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을 비판하며 레바논에 대한 공격도 묵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우리는 모두를 위한 평화를 추구하며 어떤 나라와도 충돌할 의도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취임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중도 개혁파로, 숙적 섬멸과 같은 표현을 피하면서 보수 강경파인 전임자들보다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란의 고위 관료들과 이란 최정예 부대 혁명수비대(IRGC)의 사령관들도 이란의 핵심 동맹인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공격하는 이스라엘에 보복하겠다는 입장을 밝힐 때 이례적으로 표현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 이란이 키운 대리세력 공격받지만…보복 '주저'
이란은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무장 및 훈련을 지원하며 역내 자신들의 대리세력으로 키웠다.
이란 지도부는 이 중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헤즈볼라를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막는 주요 억지력으로 삼고 있다고 BBC 방송은 설명했다.
헤즈볼라는 이란의 지원으로 1980년대 창설돼 레바논의 가장 강한 군대이자 정치세력으로 변모했다.
이란은 헤즈볼라가 보유한 첨단 미사일과 무인기(드론) 등 각종 무기의 공급처다. 미국은 이란이 연간 7억달러(약 9천235억원)의 자금을 지원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란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인 헤즈볼라를 겨냥한 무선호출기(삐삐)와 무전기 동시다발 폭발 사고가 지난주 레바논에서 발생해 모두 39명이 숨졌다.
이스라엘이 배후로 지목된 이 사고로 레바논 주재 이란 대사는 중상을 입었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비난했지만, 즉각 공개적인 보복 위협을 하지는 않았다.
또 지난 7월 하마스 수장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됐을 때 이스라엘을 비난하며 보복을 다짐했지만, 아직 행동에는 옮기지 않았다.
이는 올해 4월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대사관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IRGC 고위 지휘관이 살해됐을 때 이스라엘을 향해 수백 대의 드론과 미사일을 발사하며 신속하게 대응한 것과 대조된다.

◇ 이란 내 일부 보수 강경파 반발…하메네이 손에 달려
이란의 신중한 행보는 내부는 물론 동맹들의 우려와 반발도 사는 것으로 보인다.
한 전직 IRGC 사령관은 BBC 방송에 후속 조치 없이 위협만 반복하는 것은 이란 내부 지지층과 해외 대리세력 사이에서 IRGC의 신뢰를 더욱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 중인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유화적 발언은 이란 강경파의 도마 위에 올랐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지난 23일 미국 언론에 이스라엘이 이란을 전쟁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나 "이란은 이스라엘이 똑같이 한다면 이스라엘과의 긴장을 완화하고 무기를 내려놓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측근인 일부 보수 강경파는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이스라엘과의 긴장 완화 언급을 비판하며 그가 자신의 위치를 알고 이런 인터뷰를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25일 뉴욕에서 할 예정이던 기자회견이 취소됐다.
이슬람 신정일치 체제의 이란에서는 최고지도자가 절대 권력을 갖고 있으며 국방, 안보, 외교 등 국가 주요 정책을 좌우한다.
하메네이가 25일 재향군인들에게 연설할 때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계획이나 위협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으로 주목할 만한 일이라고 BBC 방송은 평가했다.

◇ 이란, 헤즈볼라 SOS에 美개입 촉발 경계…동맹 외면도 부담
앞서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24일 이스라엘과 서방 당국자를 인용, 헤즈볼라가 최근 이란에 이스라엘에 대한 직접 공격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란이 "현재는 적절한 시점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란으로서는 섣불리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스라엘을 공격할 경우 미국의 군사적 대응을 촉발해 이란이 분쟁의 소용돌이에 깊이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큰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장기간 제재로 경제가 마비되고 민심이 악화한 상황에서 이란 정권을 지탱하는 IRGC가 미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현 권력 체제가 약화하고 이란 적대국들의 위협도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무력 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경우 위기가 닥쳤을 때 이란이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동맹보다 우선시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이로 인해 역내 영향력 등 이란의 입지가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kms1234@yna.co.kr
휴전압박 무시 이스라엘, '레바논 내 지상전 기동' 모의훈련/ 연합뉴스 (Yonhapnews)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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