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우 디지털 플랫폼 정책포럼 위원장 "데이터 쌓아 정책 결정을"
"AI, 위험성 탓 미래엔 기술 소유 제한 가능성…미리 표준 끌어올려야"
(서울=연합뉴스) 조현영 기자 = "혁신은 법으로 금지된 경계선에서 일어나기에 위반 행위는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플랫폼 규제는 자율 중심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최근 티몬·위메프 사태와 딥페이크 성범죄 등이 문제가 되면서 거대 플랫폼 사업자에 책임과 의무를 부담하기 위한 규제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정부는 그 일환으로 지난 9일 지배적 사업자를 사후 추정해 규율하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나섰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이에 대해 이미 비슷한 내용의 규제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규제가 또 필요하지 않다거나, 규제가 이뤄지더라도 창구를 단일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등의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원우 디지털 플랫폼 정책포럼 위원장(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25일 기자와 만나 최근 논의되는 디지털 플랫폼 규제 정책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디지털 플랫폼 규제는 독점 행위에 대한 규제와 콘텐츠에 대한 규제로 나뉘는데, 현재 논의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전자에 해당한다.
이 교수는 "현재 논의되는 규제가 본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누구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기에, 먼저 자율 규제에 맡겨 상황을 지켜보면서 데이터를 쌓고, 이에 기반해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법 위반은 악의적으로 이득을 취하려 할 때도 일어나지만 혁신이 이뤄지기 위해서도 발생할 수 있기에 사업자 스스로 기준을 세워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자율 규제 없이 과도한 법 규제로 네이버[035420], 카카오[035720] 등 국내 사업자들이 경쟁력을 잃으면 플랫폼 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도 줄줄이 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다고 그는 경고했다.
이는 강력한 자국 플랫폼이 없어 미국 기업만 규제하면 되는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자국 플랫폼의 점유율이 높아 비슷한 수준으로 규제가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국내에서 네이버와 구글의 점유율이 비슷하다 해도 해외까지 넓히면 다윗과 골리앗 수준인데, 같은 수준으로 규제하면 결국 국내 기업 경쟁력만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해외 빅테크만 규제하면 국제 소송에 휘말리거나 통상 압력 등이 생길 수 있어서 문제다.
이 교수는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기업이 튼튼하게 잘 나가야 스타트업도 같이 성장할 수 있다"며 "해외에서는 스타트업의 가능성을 봐 대기업이 이를 사들이고 스타트업은 다시 새로운 창업을 하면서 선순환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플랫폼 회사의 자회사가 많아지면 '문어 발'이라고 비난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규제가 도입된다면 글로벌 사업자에 대한 실효성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가장 큰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지배적 플랫폼 사전 지정제가 빠져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사전 지정제가 빠졌어도 추정제가 들어갔기에 공정위로서는 사실상 규제할 수 있는 것은 다 할 수 있다"며 "규제 영역과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가 정해져 있기에, 사전 지정제로 하려던 것은 사후에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후 추정 역시 기업 입장에서 부당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만큼, 추정을 깨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규제 대상에서 쿠팡과 배달의민족이 빠진 데 대해서는 강화된 개정안을 적용받지 않을 뿐, 기존 공정위 규제는 여전히 받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플랫폼 콘텐츠 규제에 있어서도 자율 규제가 중요하며, 자율 규제가 실효성이 없다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법에 의한 경직적인 규제가 부적절한 경우 자율 규제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딥페이크처럼 플랫폼의 콘텐츠에 대한 규제는 표현의 자유와 연결돼 있어 많은 국가가 직접 규제하지 않고 자율 규제에 맡겨온 영역"이라며 "미국도 정치, 선거 관련 분야 콘텐츠만 규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인공지능(AI) 물결이 플랫폼 시장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해서는 "이미 모든 것이 AI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고 미래에는 AI 자체가 플랫폼이 될 것"이라며 "나중에는 핵무기처럼 AI의 위험성 때문에 국제 협정을 통해 AI 기술을 소유하는 것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우리나라도 AI 표준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디지털 플랫폼 정책 포럼은 2021년부터 디지털 플랫폼의 건전한 발전과 혁신 환경 조성을 위해 구성·운영되고 있는 산·학·연 합동 논의체다.
hyun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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