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철광석값 하락했으니 내려야" vs 철강 "업황 부진해 못내려"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올해 하반기 선박 후판(선박에 쓰이는 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 가격 책정을 두고 국내 조선·철강업계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하반기 후판 가격은 대체로 매년 6월 말께 결정되지만, 올해는 두 업계의 현격한 입장차로 빨라야 다음 달에나 합의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다 국내 철강업체들이 중국산 후판 수입을 막기 위해 반덤핑 제소까지 나선 상황이라 후판 가격을 둘러싼 조선·철강업계의 갈등은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30일 조선·철강업계에 따르면 두 업계는 최근 몇개월간 올해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현재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극심한 불황을 겪다 몇 년 전에야 '슈퍼 사이클'(초호황기)에 진입한 조선업계는 후판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 하락에 따라 후판 가격이 인하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철강업계는 업황 부진을 들어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집계에 따르면 이달 16∼20일 중국 칭다오항 기준(CFR) 철광석 가격은 t당 91.37달러로, 올해 초 140달러에서 30% 가까이 떨어졌다.
큰 폭의 철광석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올해 상반기 후판 가격은 t당 92만∼93만원으로 작년 하반기 가격에 비해 2만∼3만원밖에 떨어지지 않았고, 그만큼 조선업계의 수익성을 갉아먹었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특히 후판이 선박 건조 비용의 20%가량을 차지하고, 선박 수주 계약의 대부분이 헤비테일 계약(선수금을 적게 받고 인도 대금을 많이 받는 형태의 계약)인 것을 고려하면 높은 후판 가격은 업체에 큰 부담이 된다고 조선업계는 강조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내 조선사들이 오랜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 2022년부터 턴어라운드에 접어들던 찰나 철광석 가격 상승에 따라 후판 가격이 대대적으로 인상됐고, 그 결과 국내 조선사의 실적 개선이 늦춰졌던 전례가 있다"며 "반대의 상황인 만큼 후판 가격은 인하돼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중국의 저가 공세와 전방 산업 부진 등으로 실적 악화를 겪고 있는 철강업계는 후판 가격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중국산 후판 수입가는 t당 70만원대로 국내 생산 후판 가격 대비 최대 20만원가량 낮고, 그 결과 올해 상반기 중국산 후판 수입량은 69만t으로 2022년 한 해 수입량을 넘어선 상태다.
이에 현대제철은 지난 7월 중국 업체들의 저가 후판 수출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산자부에 반덤핑 제소를 제기하기도 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후판 판매 비중이 20%가량 되는데 여기서 후판 가격을 인하하게 되면 철강업체들의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철강업계는 이러한 상황을 내세워 조선업계의 양보를 바라고 있지만, 높은 후판 가격으로 수익성 타격을 경험한 국내 조선사들은 차라리 저렴한 중국산 후판 투입 비중을 늘려 원가를 절감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국내 '빅3' 조선사(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의 중국산 후판 사용 비중은 20% 정도다.
HJ중공업, 케이조선 등 중형 조선사의 중국산 후판 비중은 30∼50%에 달해 만약 반덤핑이 인정돼 정상 가격과 덤핑 가격의 차액 범위 내 관세가 부과되면 이들 조선사가 역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후판 가격을 두고 조선업계와 철강업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하반기 후판 가격은 다음 달에도 쉽게 합의에 이르기 어려울 수도 있다.
후판 가격은 기한 후 결정 시 소급 적용된다.
다만 국내 조선업체들이 특화한 고수익 선종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은 화물창 등에 품질이 낮은 중국산 후판을 사용할 수 없어 두 업계의 '윈윈'을 위해서라도 빠른 타결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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