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 수장 폭사, '최악' 레바논 정치에 득일까 독일까

입력 2024-09-29 19:47   수정 2024-09-30 14:15

헤즈볼라 수장 폭사, '최악' 레바논 정치에 득일까 독일까
2년째 대통령조차 못뽑는 정국 위기 상황…"정치개혁 기회일 수도"
"헤즈볼라 지지 시아파, 반대파와 충돌하면 더 극심한 혼란" 예상도



(서울=연합뉴스) 김상훈 기자 =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 폭사가 최악의 경제난과 함께 위기를 겪어온 레바논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무력 저항을 목적으로 설립된 헤즈볼라는 수만 명의 병력과 수만기의 미사일, 로켓 등 무기를 가진 무장 집단이지만 동시에 레바논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당이기도 하다.
헤즈볼라는 준군사 조직인 '성전 위원회'와 정당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당조직은 시아파 무슬림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장기간 사실상 여당의 지위를 누려왔다.
다만, 지난 2022년 총선에서 헤즈볼라의 의석수가 14석으로 줄어들었고, 헤즈볼라가 참여하는 친(親)시리아, 반(反)시오니즘 성향의 정치연대인 '저항과 개발 블록'(일명 3월8일 동맹)이 전체 128석 가운데 61석을 확보하는 데 그치며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그런데도 3월8일 동맹은 여전히 24명의 정부 각료 중 16명을 배출하며 사실상 집권 세력에 가까운 지위를 누리며, 자신들의 의사에 반하는 입법을 좌절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그런 헤즈볼라를 32년간 이끌어온 나스랄라의 죽음은 레바논 정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과의 전면전 위기 속에서도 헤즈볼라 지도부 붕괴가 지난 몇 년간 레바논 정부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정치적 교착 상태를 종식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진단한다.
2019년 본격적인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레바논의 경제는 코로나19 대유행, 2020년 베이루트 대폭발,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겪으면서 회복 불능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이런 가운데 2022년 치러진 총선에서 헤즈볼라 동맹의 하락세와 더불어 극심한 정치적 분열이 시작됐고, 같은 해 10월 미셸 아운 대통령이 6년간의 공식 임기를 마쳤지만, 의회는 2년째 후임 대통령도 뽑지 못하고 있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중동연구소의 폴 살렘 부소장은 "많은 레바논 주민은 지금 상황이 비극적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필요했던 국내 정치를 고칠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이어 "약해지고 상처를 입은 헤즈볼라도 회복에 최소 5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에 동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장기 내전을 치른 레바논은 내전 종료후 세력 균형을 위한 합의에 따라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 출신이 각각 맡는 독특한 권력분점 체제를 유지해왔다.
이런 종파 간 권력분점은 정치권 및 정부의 부패와 무능을 낳았고, 결국 중동에서 가장 자유롭고 개방적인 국가로 평가받았던 레바논을 위기로 몰아갔다.
레바논 주민들도 종파별 이해관계에 따라 극심한 분열 양상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헤즈볼라가 자신들을 보호한다고 믿어왔던 레바논의 시아파 무슬림들이 나스랄라의 사망에 어떻게 반응할지, 또 이들이 헤즈볼라 반대 세력과 충돌할지 여부도 향후 레바논 정국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런던 소재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리나 카티브 연구원은 "헤즈볼라 구성원들은 분노에 차 있으며 베이루트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반대 세력과 충돌할 수 있다"며 "이들을 진정시키고 통합을 추구하는 것이 레바논 정치 지도자들에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레바논군은 성명을 통해 국가적 연대를 촉구하고 민감한 시기에 공공질서를 훼손할 수 있는 행동을 삼갈 것을 촉구했다.
성명은 "이스라엘군이 파괴적인 계획을 실행하고 레바논 국민 사이에 분열을 조장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수니파 무슬림으로 권력분점에 따라 총리를 지낸 사드 하리리도 "지금 필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견해차와 이기심을 극복하고 나라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대국의 향후 움직임 등이 레바논 정국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오클라호마 대학의 중동 정치학 교수인 조슈아 랜디스는 소셜 미디어에 "이스라엘과 미국이 레바논에 이란과 관계 단절, 헤즈볼라 및 그 동맹군 제거 압박을 가하면 불안이 커질 수 있다"고 썼다.
또 그는 "정치인들이 레바논 군대를 키워 국가를 장악할 것을 요구하면 헤즈볼라와 그 지지자들의 경계심과 적대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시아파 무슬림과 그 동맹까지 저항에 동참하면 레바논의 불안한 안정은 깨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비관적 관측이 현실화하면 레바논에 1975∼1990년 장기 내전의 악몽이 다시 닥칠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레바논의 독립 분석가인 나딤 셰하디는 "광란의 이스라엘은 최악의 적이다. 나스랄라의 정적들은 그의 죽음을 반기지만 그 후에도 폭격이 지속될 경우 새로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폭격이 오래 지속될수록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과 이스라엘과 어떤 식으로 합의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의 분열이 더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meola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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