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연구팀 "생쥐·인간 등 뇌 지도 제작 이정표…뇌질환 연구 등에 기여"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 성체의 뇌를 구성하는 14만 개의 뉴런(신경세포) 하나하나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보여주는 뇌 전체 신경 배선도(커넥톰·neural wiring diagram)가 처음으로 완성됐다.
미국 프린스턴대 서배스천 승(승현준) 교수와 말라 머시 교수가 이끄는 국제연구팀 '플라이와이어 컨소시엄'(FlyWire Consortium)은 3일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9편의 논문에서 이같이 밝히고 이 연구가 인간 등 다른 종의 뇌 지도 제작에 길을 열어주고 뇌 기능을 더 자세히 연구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체 동물의 뇌 커넥톰(connectome)이 완성된 것은 1982년 302개의 뉴런으로 이뤄진 예쁜꼬마선충(C. elegans) 이후 처음이다. 성체가 아닌 동물로는 뉴런 3천16개로 된 초파리 유충의 커넥톰이 지난해 사이언스(Science)에 공개됐다.
다양하고 정교한 행동들의 근간이 되는 뇌 기능은 뉴런의 활동과 뉴런 간 연결에 의해 결정된다. 연구팀은 이런 연결을 지도로 만들면 뇌 작동방식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며 생물의학 연구에 널리 사용되는 초파리는 완전한 커넥톰을 만드는 이상적인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초파리 뇌는 뉴런 수가 인간 뇌의 100만분의 1도 안되지만 비행과 탐색, 사회적 상호작용, 짝짓기 구애 등 다양하고 복잡한 행동을 하며, 학습과 생체 리듬 유전자 등 인간 유전자의 약 60%를 공유한다.
과학자들은 이런 유사성에 따라 초파리 뇌 연구가 사람 뇌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해 왔으며, 초파리 연구의 중요성은 지금까지 10명의 과학자가 초파리 연구로 6차례 노벨상을 받은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하지만 초파리 뇌 연구에서는 지금까지 부분적인 뇌 지도가 만들어졌을 뿐 전체 뇌의 완전한 지도는 제작되지 못했다.
이 연구는 전체 폭이 1㎜도 되지 않는 암컷 초파리의 뇌를 40나노미터(㎚=10억분의 1m) 두께로 얇게 자르는 것으로 시작됐다. 연구팀은 얇게 자른 초파리 뇌를 고해상도 전자현미경으로 스캔해 2천100만 장의 사진을 제작했다.
이어 100테라바이트(Tb)가 넘는 이미지 데이터를 뉴런과 뉴런 간 연결을 식별하고 매핑하도록 학습시킨 인공지능(AI)으로 분석, 13만9천255개 뉴런의 모양과 이들 뉴런을 서로 연결하는 5천450만 개의 시냅스를 추출했다.
공동연구자인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배준환 박사는 "AI가 전자현미경 사진 속 개별 뉴런의 정보를 분석하고 이를 합쳐 뇌 전체를 3차원으로 재구성한 다음, 개별 뉴런 간 연결선들을 찾아내 전체 커넥톰을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공동 연구책임자인 서배스천 승 교수는 "뇌 전체 신경 배선도를 수작업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AI 컴퓨팅 발전으로 이것이 가능해졌고 이는 AI가 신경과학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초파리 뇌 지도는 생쥐 뇌 전체 신경 배선도를 만드는 데 있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영국 케임브리지대 그레고리 제프리스 교수팀은 초파리 뇌 전체 신경 배선도를 분석해 신경세포 종류와 유형, 기능 그룹 등을 규명했으며, 이를 통해 8천453개의 세포 유형을 확인했다.
8천453개의 신경세포 유형 가운데 3천643개는 이전에 수행된 초파리 반뇌 커넥톰(hemibrain Connectome) 연구에서 제안된 것이었으나 4천581개 유형은 이전 연구 영역 외 영역에서 새로 발견된 것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또 다른 논문에서 연구팀은 AI 이미지 스캔 기술을 사용해 뉴런이 시냅스를 통해 통신하는 방식이 흥분성(excitatory)인지 억제성(inhibitory)인지 예측하고, 특정 뉴런 간 연결성이 각 영역 간 통신이나 움직임 같은 행동을 어떻게 유도하는지 규명했다.
연구팀은 이 연구 결과로 뇌 기능이 신경회로 구조에 의해 어떻게 결정되는지 연구하는 게 가능해졌다며 이번 초파리 커넥톰 제작에 사용된 방식이 향후 인간을 포함한 다른 종의 대규모 커넥톰 프로젝트에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배스천 승 교수는 "어떤 뇌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이를 통해 모든 뇌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며 "우리는 초파리 뇌 커넥톰을 통해 (뇌를) 전례 없이 상세하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공동 연구책임자인 말라 머시 교수는 "이 연구의 전체 데이터베이스(https://codex.flywire.ai/)를 공개해 모든 연구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며 "건강한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잘 이해하려는 신경과학자들에게 혁신적인 도움이 되고, 미래에 뇌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비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출처 : Nature, Mala Murthy et al., 'Neuronal wiring diagram of an adult brain',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4-07558-y.
Nature, Gregory Jefferis et al., 'Whole-brain annotation and multi-connectome cell typing of Drosophila',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4-07686-5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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