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신부' 꿈꾸던 여성은 포성 속 결혼식 취소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태어나자마자 1년째 엄마 얼굴을 핸드폰으로만 본 세쌍둥이…. 전쟁터라고 해도 제 아기들을 여기로 데려오고 싶어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살던 24세 임산부 하난 바유크는 아직도 1년 전 그날을 잊지 못한다.
세쌍둥이를 임신해 고위험군 산모로 분류되던 그는 가자지구에서는 분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지 못해 지난해 8월 간신히 이스라엘 당국 허가를 얻어 예루살렘으로 건너가 현지 병원에서 분만했다.
안도의 한숨도 잠시,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들을 뒤로 하고 그는 홀로 가자지구로 돌아와야만 했다.
이스라엘 당국이 허가한 체류 기간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바유크는 고군분투 끝에 지난해 10월 6일 아기들을 데려올 수 있는 허가를 얻어냈고, 드디어 세쌍둥이를 품에 안을 수 있을 것이란 기쁨에 가득 찼다. 하지만, 하루 만에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10월 7일 새벽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남부 기습으로 전쟁이 시작되면서 바유크는 그날 이후로 아직도 세쌍둥이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가자전쟁 1년을 하루 앞둔 6일자 기사에서 지난해 10월 7일로 시간을 되돌려 평범했던 일상이 하루 아침에 산산조각난 순간을 이처럼 포착했다.
바유크는 WSJ에 "가자지구는 포화에 휩싸여 있지만 그나마 이스라엘 병원에서는 아기들이 잘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라면서도 "하지만 영상 통화를 할 때마다 간호사들을 엄마라고 부르는 아기들을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10월의 신부'를 꿈꾸던 메람 아부 샤반도 10월 7일을 영원히 잊지 못할 날이 됐다.
하루 전인 6일까지만 해도 그는 다음날 결혼식을 앞둔 행복한 예비 신부였지만 7일 아침 핸드폰에서 울려대는 전쟁 속보 속에 신혼여행을 포함해 모든 게 취소됐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사우디아라비아로 피신해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식을 올리지는 못했다. 결혼식에 초대하려던 청첩장 명단에서 가족과 친구들의 이름이 하나둘씩 사망자 부고로 변하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불길 속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서 결혼식을 올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잿더미가 된 가자지구를 지키려 어쩔 수 없이 가족과 생이별을 선택한 이들도 있다고 한다.
44세 라피크 알 아시는 전쟁 전까지만 해도 가자지구에서 의류 매장 여러개를 운영하던 성공한 사업가였다.
중국 기업과 손잡고 사업을 확장하려던 그는 가자전쟁이 시작된 다음날인 10월 8일 이스라엘 공습으로 자신의 사무실이 있던 고층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려 잔해더미가 된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는 "내가 일했던 모든 게 먼지로 변한 것을 보던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절망감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랍에미리트(UAE) 거주 자격이 있기는 했지만 가자지구에 남아 있기로 결심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고향땅에서 떠밀려나 디아스포라 처지가 된 수만명의 팔레스타인인의 비극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가자지구가 다시 일어서는 재건의 순간에 동참하길 바란다고도 말했다.
그는 "가자지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때 나도 여기 있고 싶다"면서 "전쟁의 목격자가 되고 싶고, 화면으로는 놓치게 될 일상을 느끼고 지켜보고 싶다"면서 "재건을 돕는 첫번째 사람들 사이에 나도 한명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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