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4곳 중 3곳 대피소로…"피란민 중 35만명은 아이들"
폐허로 변한 레바논 국경지대…이스라엘 "1천100회 이상 공습"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치열한 교전을 이어가는 가운데 레바논에서 피란길에 오른 주민이 1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양측의 충돌이 쉽게 끝날 조짐을 보이지 않으면서 비교적 안전한 레바논 북부나 국외로 대피하는 이들이 급증하면서다.
9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CNN 방송 등에 따르면 레바논 주재 유엔 인도주의 조정관인 임란 리자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피란민의 수가 최소 90만명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레바논 전체 인구가 약 540만명이란 점에 비춰보면 6명 중 1명꼴로 피란길에 오른 셈이다.
리자 조정관은 "(레바논 국내에서 피란 중인) 국내 실향민만 60만명이 넘고 절반 이상이 여성과 소녀들이다. 이들 중 최소 35만명은 어린이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밖에 시리아와 이라크, 튀르키예 등 국외로 대피한 피란민 수도 30만명을 넘어선 상황이라고 전했다.
레바논 각지에 마련된 1천개에 이르는 대피소에는 18만5천명이 넘는 피란민이 몰리면서 대다수가 수용인원이 초과한 상황이라고 유엔은 밝혔다.
공립학교의 75%가량이 대피소로 전환되면서 당초 오는 14일로 예정됐던 신학기 개학도 내달 4일로 밀렸다.
유엔 국제이주기구(IOM) 소속 당국자 던컨 설리번은 대피소 중에는 피란민 100명당 화장실 수가 1∼2개에 불과하거나 전기·조명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곳도 있다면서 "인도주의적 영향이 극도로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파상 공세로 헤즈볼라의 핵심 거점으로 꼽히는 레바논 남부 국경지대는 폐허로 변해가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은 레바논 국토의 4분의 1에 이르는 구역에 대피 명령을 내리고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자국 북부와 맞닿아 있는 레바논 남부 주민들에게는 국경에서 최대 20마일(약 32㎞)까지 대피할 것을 지시한 뒤 최소 7개 방면에 걸쳐 지상군을 투입, 헤즈볼라를 몰아내려 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달 초 지상전이 시작된 이래 레바논 남부에 가한 공습이 1천100회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NYT는 이스라엘군이 지난 한 주 사이 마룬 알라스와 야룬 등 레바논 남부 국경 마을에서 건물 상당수를 철거했다고 보도했다.
발라크리슈난 라자고팔 유엔 주거관 특별보고관은 NYT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남부 국경 마을 철거 움직임에 대해 "도를 넘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제)인도법은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민간시설과 주택, 문화 관련 건물은 제네바 협약과 헤이그 협약에 의해 보호받는다"고 강조했다고 NYT는 전했다.
헤즈볼라는 작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가자지구 전쟁이 터진 이래 레바논 국경 넘어 이스라엘 북부 지역을 겨냥해 산발적인 로켓 공격을 가해 왔다.
이에 이스라엘 북부에선 주민 수만명이 남쪽으로 피란하는 상황이 초래됐고, 이스라엘은 주민들을 귀환시키겠다면서 헤즈볼라를 상대로 전면전에 나섰다.
헤즈볼라를 국경에서 약 29㎞ 떨어진 리타니강 이북으로 몰아내 '완충지대'를 확보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목표로 보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면전 이후 채택한 결의안에서 헤즈볼라의 리타니강 이남 주둔을 금지했지만, 헤즈볼라가 이를 따르지 않고 국경 마을들에 요새와 땅굴을 짓고 공격을 지속해 왔다는 이유에서다.
헤즈볼라는 게릴라전을 펼치며 이스라엘군의 공세에 맞서고 있다. 9일에는 이스라엘 북부를 겨냥해 미사일을 발사해 키르야트 시모나 지역 주민 2명이 숨지고 북부 도시 하이파 인근에서도 6명가량이 파편에 맞아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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