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이스라엘이 핵시설 공격하면 핵전략 바꿀 수도"(종합)

입력 2024-10-11 15:10  

이란 "이스라엘이 핵시설 공격하면 핵전략 바꿀 수도"(종합)
최고지도자 정치고문 "향후 계산에 확실히 영향" 경고
이란, 현재 무기급 핵 근접하면서도 '평화적 이용' 표방


(서울=연합뉴스) 김상훈 이신영 기자 = 이스라엘이 이란의 탄도미사일 공격에 대한 보복을 예고한 가운데, 이스라엘의 보복이 핵시설로 향할 경우 이란이 핵전략을 수정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정치 고문인 라술 사나에이-라드 준장은 혁명수비대가 운영하는 반관영 뉴스통신사 파르스에 "핵 시설 공격은 전쟁 중 그리고 전쟁 후의 계산에 확실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부 정치인들은 벌써 (이란의) 핵전략 정책 변화 가능성을 제기했다"며 "더욱이 그런 행동(이스라엘의 이란 핵 시설 타격)은 지역적으로나 세계적으로 레드 라인을 넘는 행위"라고 경고했다.
사나에이-라드 고문은 또 "핵 시설은 전쟁 중에도 양 당사국이 고려해야 할 프로토콜이 있다. 이란의 잠재적 대응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이에 반영되고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란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 등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 1일 이스라엘에 약 200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뒤 일부 이스라엘 우익 인사들은 이에 대한 재보복으로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겨냥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 관리들은 이를 가장 극단적인 보복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핵 시설이나 석유 인프라를 표적으로 삼지 말라고 권고해왔다.
이런 가운데 군사 전문가들은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이란의 핵시설을 이스라엘이 미국의 지원 없이 성공적으로 타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다만, 이미 이스라엘은 지난 4월 이란의 사상 첫 본토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이란 중부 나탄즈 핵시설을 방어하는 방공시스템을 타격해 파손시킨 적이 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최근 이스라엘의 대응이 "치명적이고 정확하며 무엇보다도 놀라울 것"이라며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일어났는지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란을 비롯한 전 세계가 이스라엘 재보복 공격 대상과 강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공격이 핵시설을 겨냥할 경우 엄청난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2003년 대량살상무기(WMD)를 금지한다는 '파트와'(종교지도자의 칙령 또는 이슬람 율법 해석)를 발표했다.
이어 2010년 문서를 통해 "핵무기를 포함해 화학무기, 생화학 무기와 같은 WMD는 인류에 심각한 위협이다. 화학무기의 피해자이기도 한 이란은 이런 무기를 생산·축적하는 데 특히 더 민감하다. 이에 맞서기 위해 기꺼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파트와를 내렸다.
핵을 평화적인 목적으로만 이용한다는 이 약속은 아직도 유효하지만, 이란 핵 프로그램 상황은 과거와 딴판이다.
이란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파기하자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제한하고 우라늄 농축도를 계속 높이며 핵무기 생산에 근접해왔다.
이란원자력위원회(AEOI) 위원장을 지낸 페레이둔 압바시는 이란이 무기급인 90% 농축 우라늄 생산을 시작할 수 있다고 했고, 미국 관리들도 이란이 현재 비축된 농축도 60%의 우라늄을 무기급으로 전환하는데 2주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IAEA의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이란은 현재 거의 4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무기급 연료를 확보하고 있다.
다만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아직은 핵무기를 만들겠다는 결정은 내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앞서 이란이 2003년 결정을 번복하기로 했다는 증거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고, 미국의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실(ODNI) 대변인도 하메네이가 2003년 결정을 뒤집지는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이런 점을 근거로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공격하는 것을 반대해온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미국 당국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파괴하려는 시도가 핵 개발을 지연시킬 수는 있겠지만 오히려 이란의 개발 의지를 북돋울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이 지난 몇 주간 이란의 주요 동맹에 심각한 타격을 입혀온 만큼 이란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핵폭탄을 확보하려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란 관리들은 핵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지식을 대부분 축적했으며, 이란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오면 대량살상무기를 조달하지 않겠다는 20년 전 최고지도자의 약속도 재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국가정보국(DNI) 부국장을 지낸 배스 새너도 하메네이가 2003년 결정을 뒤집을 확률이 "지금 어느 때보다 높다"며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타격한다면 이란도 핵무기 개발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이란이 몇 달 안에 '조잡한' 수준의 핵 장치를 생산할 수 있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또 이란이 대이스라엘 억제력 강화의 하나로 핵무기 제조의 길에 들어선다면, 이란 핵무기 개발 억제를 공언해온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세적인 개입을 유발해 더 큰 위험을 부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meola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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