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 사태 장기화 의미 축소…우크라 동부서 공세 집중"
"'고전 중인 동부 전선서 러 주력 부대 분산' 우크라 전략도 무위"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우크라이나군이 기습적으로 국경을 넘어 러시아 본토 쿠르스크주 일부를 점령한 지 3개월이 넘어섰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여전히 이 지역에 러시아군 주력을 투입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미국 CNN 방송이 12일(현지시간) 전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외국군에 본토를 점령 당했다는 상징성에 주목하기보다는 우크라이나 동부를 겨냥한 공세에 집중하면서 실리를 챙기려는 행보로 보인다.
CNN에 따르면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우크라이나군이 현재 쿠르스크주에서 786㎢에 달하는 면적을 점령 중인 것으로 추산했다.
우크라이나가 본토를 공격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러시아군은 지난 7월 6일 기습적으로 국경을 넘어온 우크라이나군에 속절없이 밀리는 모습을 보였으나 현재는 전선이 고착되면서 양측 모두 쉽게 진격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 상층부는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점령이 갖는 의미를 축소하면서 우크라이나에서 2년 반 넘게 펼치고 있는 전쟁 수행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려 하고 있다고 CNN은 짚었다.
러시아는 현재까지 쿠르스크에 4만명에 이르는 적지 않은 수의 병력을 투입했지만, 다수가 훈련도가 낮은 징집병과 예비군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소속 분석가 마크 갈레오티는 러시아측 초동대응 병력이 당장 찾을 수 있는 인원들을 몽땅 끌어모으는 식으로 구성됐다면서 "이건 잔돈을 찾으려 소파 쿠션 주변을 뒤지는 것과도 같았다"고 짚었다.
사태가 장기화하자 러시아 정부는 이후 숙련된 정예병을 쿠르스크에 추가배치했지만, 빼앗긴 땅을 조속히 되찾길 원하는 현지 주민들이 기대했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CNN은 지적했다.
이러한 전략은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쓰일 자원이 쿠르스크로 분산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러시아·유라시아 프로그램 연구원인 존 로프는 "크렘린은 이번 일을 축소하고 있다"면서 "(쿠르스크에서) 벌어진 일에서 대중의 주의를 돌리고 심각한 일이 아니란 인상을 만들어내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실제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군의 쿠르스크 점령을 '습격'으로 묘사하고, 러시아군의 쿠르스크 수복 작전을 '대테러 임무'로 지칭하는 모습을 보여왔고, 이런 시도는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한 러시아 군사 블로거는 "러시아인 대다수는 이미 쿠르스크 인근에서 전투가 진행되는데 익숙해졌다. 쿠르스크 지역과 상관이 없는 이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관심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는 자국에 배치된 러시아군 주력부대를 쿠르스크로 빠지게 해 고전 중인 동부 전선의 압박을 완화한다는 당초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러시아나 서방에서 현재의 전선을 국경으로 삼은 채 전쟁을 멈추자는 주장이 나오는 걸 차단하는 효과는 봤다고 로프 연구원은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을 겨냥한 공세에 최근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기에는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우크라이나 일대의 비포장도로와 평원이 거대한 진흙탕으로 변하는 '라스푸티차'(우크라이나어 베즈도리자) 현상이 발생할 시점이 멀지 않았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로프 연구원은 "크렘린은 돈바스(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의 통칭)에서 가능한 (우크라이나 쪽으로)깊숙이 진격하는데 매우 높은 우선순위를 두는 듯 보인다"면서 러시아군 입장에선 "(공세) 기회가 닫히고 있는데 매년 이 시기면 도로가 진흙탕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 국방부는 11일 우크라이나군이 점령 중이던 쿠르스크주 2개 마을을 탈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2일 밤 영상 연설에서 "러시아가 우리를 밀어붙이려 시도했지만 우린 지정된 전선을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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