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도 국내 언론만큼이나 '북한 파병'이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실제 투입된다면 제3국이 '공식' 참전하는 첫 사례인 만큼 러시아를 실체적 위협으로 여기고 있는 유럽에서는 무기 지원과는 차원이 다른 사안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당장 나토, EU 기자실 공기도 확 바뀌었다.
유럽권 매체 기자들이 한국 정부의 관련 발표가 나올 때마다 "영문 기사로 번역 안 된 내용이 있으면 좀 설명해달라"고 찾아오는가 하면, 공식 기자회견을 앞두고는 기자들끼리 북한 질문은 꼭 하자는 '결의'를 다진다.
20년 가까이 나토만 취재했다는 프랑스 매체 기자도 "여기서 북한이 이렇게까지 많이 거론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급증한 언론의 관심과는 달리 정작 나토는 파병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부터 '로 키(low-key)' 행보를 고수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 17일 공동 기자회견에 나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북한이 1만명을 파병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고 하자 "증거가 없다"며 거리를 뒀다.
그는 이튿날 국가정보원의 발표가 나온 뒤 기자회견에서는 입장이 바뀔 수 있다고 여지를 두면서도 "확인 불가"라고 말했다.
뤼터 사무총장은 21일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면서도 "북한이 파병하는 것은 중대한 긴장고조를 의미하게 될 것"이라며 '가정법'으로 우려를 표명하는 데 그쳤다.
당시 대통령실이 뤼터 사무총장의 한국측 대표단 파견을 요청한 사실 등 통화 내용을 비교적 상세히 공개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나토가 비로소 북한의 파병을 처음 인정한 건 지난 23일이다. 국정원 발표 닷새 만이다.
당시 나토 대변인은 입장문에서 "동맹국들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증거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입장문은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증거가 있다"는 첫 발언이 나온 지 2시간여만에 기다렸다는 듯 나왔다.
또 러시아에 북한군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목적'은 파악해야 한다고 단서를 단 오스틴 장관 발언과도 궤를 같이했다.
물론,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기 위해서는 검증·확인에 시간이 걸린다.
나토 입장에서는 파병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중대 전환점을 맞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나토 주축인 미국이 구체적인 파병 관련 정보를 나토 회원국들과도 공유하면서 입장 정리가 이뤄진 것인데, 처음부터 '미국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유럽 회원국들이 뒤늦게 자체 방위력 강화에 나서고는 있지만, 나토가 여전히 미국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보여준 계기도 됐다.
유럽에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나토 안보우산이 와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유럽의 저조한 방위비 지출을 이유로 나토 탈퇴까지 시사했던 터다. 그는 우크라이나 지원에도 회의적이다.
이달 초 취임한 뤼터 사무총장은 미 대선에 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 함께 협력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미국 대선이 불과 2주 앞으로 다가왔으니 그의 단언대로 될지 머지 않은 시일 내에 확인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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