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반도체법 비판·관세 부과 언급에…삼성·SK 대미 투자 차질 우려
배터리 업계, IRA 축소 여부에 촉각…정부 "민관 원팀으로 불확실성 대응"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한지은 기자 = 미국 대통령 선거가 약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미국의 보호 무역주의 기조가 한층 심화하는 모습이다.
둘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미중 갈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자국 보호를 위한 세부적인 산업·통상 전략은 엇갈리고 있어 빠르게 재편되는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국내 기업의 셈법도 한층 복잡해진 상황이다.
◇ 트럼프 "반도체 기업에 왜 돈 주나"…삼성·SK, 대규모 투자 향방은
29일 업계에 따르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초박빙의 판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대선 결과에 따라 국내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 등의 주요 산업에 미칠 영향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달 들어 공화당 후보로 나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잇따라 나오며 국내 기업들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한 인터뷰에서 반도체 기업이 미국에 투자하도록 보조금을 지급하는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을 비판하고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칩스법에 대해 "그 반도체 거래는 정말 나쁘다"며 "단 10센트도 내놓지 않아도 됐다. 내 말은 매우 높은 관세를 부과해 그들이 와서 반도체 기업을 공짜로 설립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만 TSMC를 예로 들기는 했지만, 향후 트럼프 당선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미 투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달러(약 23조5천억원)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삼성전자는 투자 규모를 늘려 2030년까지 총 45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4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데 38억7천만달러(약 5조2천억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미국 정부는 삼성전자에 보조금 64억달러를, SK하이닉스에 최대 4억5천만달러의 연방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한 바 있다.
만약 트럼프가 당선돼 첨단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고 바이든 정부가 약속한 보조금 정책을 뒤집는다면, 이를 토대로 대규모 투자를 추진해 온 국내 반도체 기업은 기존 투자 전략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정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아직 미국 대선 결과를 예측하기는 이르다"면서도 "미국 내 팹(fab·반도체 생산공장)이 그렇게 많지 않고, 해외에서 생산돼서 많이 들어오고 있다. 트럼프가 발언대로 높은 관세를 매긴다면 글로벌 공급망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가 당선되더라도 반도체 관련 정책을 전면 수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서정건 경희대 교수는 "반도체법은 필리버스터가 적용되는 법안으로, 쉽게 폐기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라며 "트럼프가 반도체법을 언급한 것은 대만의 공급망, 미국 내 일자리 등을 위한 일종의 레토릭(수사)일 뿐, 입법 차원에서 반도체 정책에 급격한 변화가 오기는 어렵다"고 해석했다.
이어 "트럼프가 당선된다고 해도 관세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아 반도체와 관련해 트럼프나 공화당이 체계적인 대안을 짤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도 "미국 반도체법의 목적이 미국에 공장을 짓도록 유도하는 데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반도체법이 국내 기업에 반드시 유리하다고 볼 수도 없다"며 "트럼프 후보가 바이든 행정부의 지원을 모두 뒤집을 형태로 강력히 발언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모두 바꿀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 IRA 폐지 여부에 배터리업계 촉각…"자국 우선주의 기조 심화"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부진을 겪고 있는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낸 보고서에서 해리스 후보 당선시에는 자동차, 배터리, 방위산업에서의 '청신호'를 전망했다. 대미(對美) 자동차 수출 호조와 함께 캐즘을 겪는 배터리 산업의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취지다.
반면 트럼프 후보 당선 시에는 보편·상호 관세와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기조로 대미 수출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어 배터리 산업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보고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첨단제조 생산 세액공제와 구매 보조금 제도가 실제 폐지될지 여부는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연방 상·하원 총선 결과까지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현재 K-배터리 3사는 IRA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로 영업이익을 메우는 상황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연결 기준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4천483억원으로, AMPC 4천660억원을 제외하면 177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SK온의 AMPC 규모는 1분기 385억원에서 2분기 1천119억원으로 증가했다.
다만 IRA 보조금 철폐 역시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 다수당을 차지해야 가능한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결과는 지켜봐야 한다는 전망도 있다.
김봉만 한국경제인협회 국제본부장은 "양당의 정책 기조가 미국 우선주의라는 큰 줄기는 비슷하지만, 2020년 대선보다도 정책 차이가 벌어졌다"며 "특히 에너지 정책에 있어서 입장이 크게 갈리는 만큼 반도체, 자동차 등 업종별로 맞춤형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현재 미국이 추구하는 자국 우선주의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보여 당분간 미중 갈등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와 공급망 재편 등의 불확실성은 지속될 전망이다.
정부는 미 대선 전후로 글로벌 통상전략회의 등 민관 채널을 적극 가동해 주요 대미 투자 기업과 경제단체 등과 긴밀히 소통해 민관 원팀으로 대미 통상 불확실성에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통상정책자문위원회 회의에서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더라도 그간 구축된 각종 협력 채널을 바탕으로 첨단 산업 협력, 공급망 파트너십을 강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미 재무부는 28일(현지시간) 반도체와 양자컴퓨팅, 인공지능(AI) 등 최첨단 기술과 관련한 미국 자본의 중국 투자를 통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우려 국가 내 특정 국가 안보 기술 및 제품에 대한 미국 투자에 관한 행정명령 시행을 위한 최종 규칙'을 발표하고 이를 내년 1월 2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에 대해 "미국 재무부 행정 규칙은 준수 의무자가 미국인 또는 미국 법인으로 현재까지 우려국에 포함된 나라는 중국(홍콩, 마카오 포함)이 유일하다"며 "준수 의무자, 투자 제한 대상 등을 볼 때 우리 경제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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