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자국 첨단산업 보호를 위한 강대국의 견제가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노동 시장의 규제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현재 기술 인재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근로시간 규제까지 더해지면서 첨단 기술개발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의대 선호와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기술 인재 부족이 심화하는 가운데 각국의 인재 유치전으로 해외 인재 유출도 심각한 상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지난 3월 낸 '초격차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글로벌 기술 협력 촉진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과학 기술 연구인력 부족 인원은 2019∼2023년 800명에서 2024∼2028년 4만7천명으로 5년새 약 60배 수준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 전문 인력에 대한 근로시간 제한 규제는 결국 국가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실제로 주요 선진국의 경우 근로시간 규제와 함께 근로 유연성을 보완할 수 있는 제도를 자국 실정에 맞게 도입해 운용 중이다.
미국은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제한하고 있지 않다. 대신 일주일에 40시간 이상 일할 경우 추가근로시간에 대해 정규 임금의 최소 1.5배를 받는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8월 엔비디아 직원들이 새벽 1∼2시까지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 7일 근무할 때도 주기적으로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일본은 지난 2018년 고소득 전문직을 노동시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고도(高度) 프로페셔널' 제도를 도입했다. 중국 IT 업계에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하는 것을 의미하는 '996' 관행이 만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국내에서도 자발적으로 더 일하고 그만큼 더 높은 보상을 원하는 첨단산업 인력에 대해서는 근로시간 규제 예외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앞서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지난 8월 낸 '수출기업의 노동생산성 둔화 원인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국제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기업들은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유연한 인력 운용이 필수적"이라며 "노동법제의 고용친화적 정비, 근로시간에 대한 획일적인 규제 개선, 직무·성과 중심으로의 임금체계 개편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의 지난해 조사 결과 국민의 54.9%는 현행 주 52시간제에 대해 "업종·직종별 다양한 수요가 반영되기 어렵다"고 답하기도 했다.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고소득 전문직에게는 근로시간 규율을 적용하지 않는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누가 더 빨리 기술을 개발하느냐'의 경쟁인 첨단산업 분야에서 개발 지연을 막기 위해서는 근로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정부와 국회가 협의 중인 '반도체 특별법'에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 등을 근로시간 규제에서 제외하는 조항을 포함하는 방안 등도 거론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특별법에 이런 내용이 포함되면 미국이나 일본처럼 전문직 종사자들의 근무시간 자율성을 제고하고 첨단 산업의 미래 기술을 책임질 엔지니어들이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현행법은 과거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에서 근로자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된 것인데 전문직·사무직까지 획일적으로 근로시간을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처럼 고소득자에 대한 초과근무 수당을 효율화할 수 있다면 근로자간 임금 격차를 줄이고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낮춰 추가 채용과 근로조건 개선 등의 여력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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