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국내 정치입지 강화…전쟁 마음대로 가능할지는 미지수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에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될 거라는 데 '올인'했다.
그는 최근 수개월간 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노골적이고 의도적으로 엇박자를 냈으며, 미국 대통령선거 당일에는 그간 미국의 요구에 수용적 태도를 보여온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을 전격 해임하는 초강수를 뒀다.
트럼프의 백악관 귀환이 유력해지자 네타나후 총리와 그의 각료들은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6일 새벽 트럼프가 승리 연설을 하자마자 엑스(X·옛 트위터)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귀!"라며 축하한 데 이어 약 20분간 전화통화를 하면서 '이란 위협'에 대한 대응을 포함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타마르 벤 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은 "이제 전면적 승리를 해야 할 때"라며 테러범죄로 유죄판결을 받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법 제정 등 현안에 대해 트럼프가 이스라엘과 의견을 같이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허용토록 압박을 가해왔으며, 만약 이스라엘이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UNRWA)의 구호 활동을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계속 고집한다면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지원 제한 개시 시점은 미국 대선이 치러진 후로 미뤄둔 상태였고 민주당 후보인 해리스 부통령이 낙선했으므로 바이든 행정부의 이런 방침은 거의 효과가 없게 됐다.
설령 '레임덕'인 바이든 행정부가 임기 막판에 무기 지원 제한을 한다고 하더라도, 네타냐후는 내년 1월 20일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다시 취임할 때까지만 기다리면 그만이다.
미국은 트럼프 1기 집권기인 2018년에 UNRWA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가 3년 후 바이든 집권기에 이를 재개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 가자지구와 서안지역 등 팔레스타인 땅을 전면적으로 직접 통제하고 향후에는 아예 합병해버릴 수도 있다는 이스라엘의 구상에 걸림돌이 사라지게 된다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트럼프 승리가 중동에 미치는 가장 즉각적이고 영향이 큰 파장은 이스라엔 극우파의 '합병파'에 힘이 실렸다는 점이다. 지도를 다시 그리게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승리로 네타냐후의 국내 정치 입지는 강화될 것이 확실하며,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지금보다 자유가 제한되고 권위주의적 색채가 짙어진 국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네타냐후는 이제 자신이야말로 모든 면에서 위대한 승자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가일 탈시르 예루살렘 히브리대 정치학과 부교수의 관측을 전했다.
탈시르 교수는 네타냐후와 트럼프 양쪽 모두 대중영합형 지도자라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을 자신들의 권위주의적인 목표에 동원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네타냐후가 작년에 사법부의 독립성과 권한을 심하게 축소하는 '사법개혁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을 때는 이를 '불행한 일'이라고 비판한 미국의 반대에 부딪혔으나,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네타냐후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트럼프 행정부가 네타냐후에 가할 수 있는 압박 수단은 바이든 때보다 훨씬 강하고 다양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는 이미 대선 전 선거운동이 한창일 때 네타냐후에게 편지를 보내서 자신이 취임할 시점에는 가자지구 군사작전이 종료돼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또 레바논에서도 조기에 휴전이 이뤄지기를 원한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게다가 네타냐후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파괴해버리는 것을 전략적 목표로 삼고 있으나, 과연 트럼프가 그런 대담한 목표를 지지해줄지는 미지수다.
"트럼프는 이스라엘이든 팔레스타인이든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에게 득이 되느냐만 신경쓰는 사람"이므로, 오히려 의외로 이 지역 현안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WP가 전한 한 전문가의 평가다.
WP는 트럼프 낙승을 계기로 이스라엘 내 강경파와 온건파가 품은 서로 다른 기대들도 소개했다.
강경파에서는 앞으로 이스라엘이 이란과 대립각을 더욱 직접적으로 세울 수 있게 될 것이며 가자지구 서안의 이스라엘인 정착촌 문제에서도 트럼프가 이스라엘 편을 들어주리라고 희망한다.
온건파에서는 트럼프가 네타냐후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전쟁을 마무리하고 가자지구에 억류된 인질들을 집으로 데려오도록 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트럼프 당선으로 변화가 생기더라도 자신들의 입장에서 상황이 호전되지는 않으리라는 절망감이 이어지고 있다.
라말라 소재 팔레스타인 경제정책연구원의 라자 칼리디 원장은 "트럼프 집권으로 더 나아질 이유를 전혀 찾을 수 없다"며 앞으로 수개월간 "가자에서 더 많은 죽음과 파괴가 이어지고, 서안지구에서는 (이스라엘군이 강요하는) 제한이 더 심해지고, 빈곤은 더욱 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solat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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