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평원, 봄·가을에 거대한 진흙탕으로…전쟁 양상 변화시켜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미국의 장거리 미사일 타격 허용 등으로 새 국면을 맞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또 하나의 변수가 더해진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며 생기는 우크라이나 평원의 급격한 환경 변화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봄과 가을에 비가 오면서 흑토지대가 진흙탕으로 변하는 이른바 '라스푸티차'(우크라이나어 베즈도리자) 현상이 찾아온다.
미끄럽고 푹푹 빠지는 진창에서 병사들과 장갑차들은 전진하기 어려워진다.
낮아지는 기온 속에 가을비를 맞은 병사들은 건강도 악화해 이중고를 겪게 된다.
19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이미 10월 내내 우크라이나에는 꾸준히 가을비가 내렸고, 이에 따라 라스푸티차 현상이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비와 추위가 함께 찾아오는 악천후 속에서 열병, 독감, 편도선염 등 각종 질병에 걸린 병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지역의 의무 여단 지휘관인 안드리 즈홀로브에 따르면 그가 속한 부대원 2천명 가운데 하루 두세 명이 질병으로 전선에서 이탈하고 있다.
파상풍 환자도 급증했다. 즈홀로브는 "진흙이 감염을 옮긴다"며 "부상병이 후송되지 못한 채 4~6시간을 대기하다 보면 작은 상처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병사들은 동상을 피하기 위해 판초 우의로 참호를 덮어두거나, 생리대를 군화 깔창으로 사용하는 등 나름대로 라스푸티차 속 생존 방법을 찾고 있다.
그러나 장기화된 전쟁 속에 40∼50대 남성들까지 전방에 배치되면서 이제는 류머티즘이나 관절염 환자까지 늘어나고 있다.
도로 사정이 나빠지면서 부상병을 후송하는 것도 쉽지 않다. 최근에는 구급차가 미끄러져 강으로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진흙탕이 된 도로와 함께 전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앙상해진 나뭇가지들이다.
낙엽이 지고 병사들을 은폐·엄폐해줄 나뭇잎이 사라지면서, 적의 공습을 피해 전진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조기종전을 공언함에 따라 전방의 '땅 따먹기' 식 공방이 한층 거칠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병사들에게는 최악의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예비역 대령 올레흐 즈다노프는 "길이 통과하기 어려워짐에 따라 전쟁은 '지키기'에 치중하는 양상이 된다"며 "나뭇잎이 없으면 매복이 어려워지고 포병에 의존하는 장거리 전투 경향을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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