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네덜란드 "입국시 체포", 헝가리·아르헨 부정적
미국 "영장 반대"…실질적으로는 타격 별로 없고 '여행제한' 정도 효과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국제형사재판소(ICC)가 21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전 이스라엘 국방장관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데 대해 세계 각국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영국을 포함한 상당수 유럽 국가들은 체포영장을 집행하는 것이ICC에 관한 로마규정에 서명한 124개 당사국의 법적 의무라고 강조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날 "정치적 결정이 아니다"라며 "EU의 모든 회원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 모든 당사국은 이 법원 결정을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역설했다.
귀도 크로세토 이탈리아 국방장관은 국영 RAI TV에 "(네타냐후나 갈란트가 이탈리아에 입국할 경우) 우리는 그들을 체포해야만 한다"며, 이는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법적 의무라고 설명했다.
카스파르 펠드캄프 네덜란드 외무장관 역시 체포영장 집행 의무를 준수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2020년 EU를 탈퇴한 영국도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총리실 대변인은 영국 정부가 ICC의 독립성을 존중한다고 설명했다.
현 외무장관인 데이비드 래미는 야당 시절인 지난 5월 "ICC 체포영장이 발부된 후 네타냐후가 영국에 입국하면 영국이 그를 체포할 법적 의무를 진다"는 취지로 발언한 바 있다.
사이먼 해리스 아일랜드 총리는 이번 ICC 결정이 "매우 의미있는 조치"라고 평가하면서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모두가 국제법을 준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ICC의 규정과 판결을 준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무장관도 이와 비슷한 입장을 내놨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정부 성명을 내고 "이번 조치는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반(反)인류 범죄와 전쟁범죄에 대해 정의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가는 중요한 진전"이라며 ICC 결정을 환영했다.
튀르키예의 누만 쿠르툴무슈 국회의장과 이을마즈 툰치 법무장관 역시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로마규정 당사국 가운데 ICC 결정에 부정적 반응을 보인 경우도 없지 않았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ICC 결정에 "심대한 이견"이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스라엘은 잔혹한 공격, 비인도적 인질 억류, 무차별적 공격을 당하고 있다"며 "이런 끔찍한 행위들을 무시하고 한 국가의 적법한 방어를 범죄로 취급하는 것은 국제 사법의 정신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말도 안 되는 수치스러운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오르반이나 밀레이가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명시하지는 않았다.
로마규정 당사국인 프랑스는 '간보기'를 하고 있다.
프랑스 외무부 공보담당자는 네타냐후나 갈란트가 프랑스에 입국할 경우 체포할 것이냐는 질문에 "법적으로 복잡한 쟁점이어서, 오늘 논평하지는 않겠다"며 입장 표명을 회피했다.
ICC 당사국이 아니며 이스라엘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미국은 ICC의 체포영장 발부 결정에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동등하게 볼 수는 없다. 전혀 없다"며 "우리는 이스라엘과 언제나 함께해 이스라엘 안보위협에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백악관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을 통해 성명을 내고 ICC 결정을 "근본적으로 거부한다"고 밝혔다.
ICC 체포영장 발부 결정이 명분상 중대한 일이긴 하지만 네타냐후와 갈란트에게 실질적으로는 별다른 타격이 되지는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결정이 법적 효력을 가지는 로마협정 당사국들에 이들이 입국할 일이 당분간은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여행 제한' 정도의 효과가 있을 뿐이다.
또 상당수 로마협정 당사국이 네타냐후나 갈란트가 자국에 입국할 경우 체포영장 집행이 법적 의무라는 점은 인정하고 있으나, 실제로 집행에 나설지는 불확실하다.
각국 정부가 ICC 체포영장을 집행하려면 자국 법원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는 절차를 거쳐야 하며, 이런 절차를 적극적으로 밟으려는 의지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로마협정은 1998년에 채택된 후 2002년에 발효돼 ICC 설립의 법적 근거가 된 국제조약이다. 한국도 2000년에 서명과 비준을 마친 당사국이다.
한때 당사국이었던 국가들 중 이스라엘과 미국이 2002년에, 수단이 2008년에, 러시아가 2016년에 탈퇴했다. 중국은 가입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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