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 인터뷰
혁신과 규제 사이 절충점 찾아 '내 손안의 은행' 만들 것
한국증시 어렵지만 개미목소리 커지며 개선되는 중
국내은행, '베끼기' 말고 '차별화 서비스' 나서야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11년 전이었던 2013년 말 방송됐던 전지현·김수현 주연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최고시청률 28%를 넘었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중국 시청자들은 주인공 천송이(전지현)가 입었던 코트를 사려고 몰려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온라인 구매를 둘러싼 논란이 제기돼 금융규제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곤욕을 치렀다. 박근혜 대통령이 온라인 구매 때 공인인증서와 액티브X를 설치하는 등의 번거로운 절차 때문에 중국 소비자들이 구입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본인 인증 등의 보안 절차가 코트업체의 매출은 물론 '한류의 세계화'를 가로막는 나쁜 규제로 지목됐던 탓이다.
당시 금융위원회의 손병두 금융서비스국장은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핀테크 업계의 중장기 발전 방안을 담은 'IT·금융 융합지원방안'을 만들어 발표했고 이는 핀테크 산업의 기틀을 잡은 토대가 됐다.
25일 연합뉴스와 만난 손병두(60) 토스인사이트 대표는 당시 업무가 핀테크 혁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면서 '복잡하고 어려운 금융'을 '알기 쉽고 친숙한 금융'으로 만드는 열쇠가 바로 '핀테크'에 있다고 설명했다.
토스인사이트는 토스가 최근 설립한 금융경영연구소다. 손 대표는 금융위 부위원장과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역임한 뒤 지난 1일 토스인사이트의 신임 대표로 취임했다.
그는 금융규제를 다루는 당국에서 근무했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삼아 혁신과 규제가 충돌하는 업계의 현장에서 절충점을 찾고 금융산업의 혁신과 발전 방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손 대표는 또 국내 주식시장이 현재 어렵지만 주주행동주의 펀드·소액주주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기업과 대주주의 문제점이 제어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국내 은행들은 똑같은 상품·서비스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음은 손 대표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 오랜 공직 생활 후 핀테크 업계에 뛰어들었는데 핀테크 산업의 전망과 비전은.
▲ 핀테크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을 2014년으로 기억한다. '천송이 코트' 논란이 있은 뒤 담당 국장으로서 IT와 금융의 융합방안을 만들고 규제혁신의 기초를 닦았던 인연이 있다. 그동안 핀테크 랩, 제휴 서비스들이 금융권의 위협적인 경쟁상대로 자리 잡는 등 비약적 성장을 이뤘다. 이젠 바야흐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의 시대인데 AI 기술의 윤리적, 법적 이슈가 대두될 것이고 이에 대한 규제 강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방안이 필요하다. 앞으로 토스의 싱크탱크 역할을 할 토스인사이트에서 핀테크 산업의 글로벌 트렌드, 산업의 발전방향 등을 연구할 예정이다. 특히 규제와 혁신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이 충돌이 적절히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 토스의 앱이 젊은 금융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향후 계획은.
▲ 토스가 새 서비스를 내놓을 때마다 국내 대형 금융지주 회장들이 이를 참고한다고 한다. 특히 젊은 소비자들 사이엔 토스의 점유율이 매우 높다. 예금과 대출, 금리 등 복잡하고 어려운 금융을 손쉽게 해결하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토스는 앱을 통해 '내 손안의 은행'을 구현하는 서비스를 선도할 것으로 생각한다.
-- 금융산업이나 핀테크에는 규제를 풀면 사고가 발생하고 이 때문에 다시 규제를 강화하는 악순환을 해결할 방안은.
▲ 핀테크의 경우 규제 샌드박스(기업이 혁신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일정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해주는 제도)가 있다. 샌드박스를 도입한 이후엔 규제와 혁신의 간극이 좁아졌고 유연해졌다.
-- 최근 국내 주식시장의 주가가 급락하는 등 투자자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거래소 이사장을 역임했는데 국내 시장 부진의 원인은.
▲ 트럼프 당선 이후 여러 가지 정책 전망으로 인해 국내 증시가 어려운 상황이다. 구조적으로는 기업 펀더멘털이 취약해졌고 주주환원 정책도 미흡하다. 이로 인해 해외주식이나 가상 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
-- 한국 시장이 저평가받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 시장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기업들은 저금리 상황에서 투자보다 부채상환에 치중했고 이 때문에 성장성을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워졌다. 상장기업들은 배당 성향을 높이는 등 밸류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적하는 환전, 투자자등록제도, 영문공시, 공매도 등은 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보완이 필요하다. 모두 한 번에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중장기 플랜을 갖고 긴 호흡으로 글로벌 투자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 상장기업들의 쪼개기 상장, 배당 부진, 소액주주 경시 풍토 등도 문제로 지적되는데.
▲ 밸류업은 한 번의 조치로 완성될 수 없는 과제다. 일본도 10년 이상 걸렸다. 그래도 최근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철회나 두산밥캣의 합병방안 수정 등이 대표적이다. 주주행동주의 펀드나 소액주주들의 활발한 활동이 일부 상장기업의 주주경시 풍토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더구나 최근 상장기업들의 자발적인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늘어나는 것은 전례 없던 현상이다. 거래소 중심의 기업가치 제고계획 공시 독려도 시간이 지나면 자리를 잡을 것으로 기대한다.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확보해나가면 반드시 성과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 국내 은행들도 '이자 장사'에만 안주한다는 비판이 있는데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 국내 은행들의 순이자마진이나 수익은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 높지 않은 편이다. 은행이 돈을 번다고 비난받는 풍토에서는 금융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은행들은 이런 지적을 혁신 노력에 속도를 내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각 금융회사는 비슷한 유형의 서비스를 똑같이 제공하고 있는데 각자의 특장점을 살린 차별화 서비스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손병두 대표는 누구?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 후 행정고시 33회로 공직에 입문한 정통 금융관료다. 2008년 외환시장을 관장하는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 외화자금과장으로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직접 경험했다. 금융위원회에서는 금융서비스국장, 금융정책국장, 상임위원. 사무처장을 거쳐 부위원장을 지냈다. 이어 2020년부터 올해 초까지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역임해 국내 증권과 은행 등 금융 부문의 실무와 정책을 꿰뚫고 있는 최고의 전문가로 꼽힌다.
hoon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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