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수익 추구에 논란 여전…론스타 등 전국민 트라우마 남겨
지배구조개선 '행동주의'에 긍정 평가도…"중립적으로 봐야"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수년 전만 하더라도 사모펀드를 둘러싼 세간의 인식은 '먹튀', '투기자본' 등 부정적 평가 일색이었다.
단기 수익 극대화에 치중한 나머지 기업을 망가뜨릴 정도의 강도 높은 비용 절감도 서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종의 '기업사냥꾼' 정도로 인식됐다.
다만 주식투자자 수가 크게 증가하고 개인투자자들의 의식 수준도 상향 평준화한 가운데 최근에는 사모펀드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전략이 많아지면서 이 같은 인식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 단기 이익 추구에 '투기자본' '기업사냥꾼' 인식 뿌리 깊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는 국내외 금융기관, 연기금 등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고, 이 자금으로 투자 대상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한 뒤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비싼 값에 되판다. 수익은 연기금 등 출자자(LP)들과 나눈다.
이러한 비즈니스모델 속성상 사모펀드는 10년 안팎의 투자 기간 내 기업을 매각해 자금을 반드시 회수(엑시트)해야 한다. 대부분 장기적인 안목으로 기업을 경영하기보다는 단기적으로 수익 극대화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업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경영 효율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비용 절감과 핵심 자산 매각, 대량 해고 등을 일삼는다는 이유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국민 대다수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해외 대형 사모펀드가 헐값에 기업과 은행을 인수한 뒤 살벌한 구조조정을 거쳐 수조원의 시세차익을 얻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사모펀드가 기업 인수·합병(M&A)을 시도할 때마다 '해외 투기자본'이라는 국민적 반발이 일어나는 것도 이 같은 '아픈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2000년대 초중반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매각 과정을 둘러싼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은 전 국민에 '사모펀드 트라우마'를 남겼고, 사모펀드를 '기업사냥꾼'의 동의어로 인식되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최근 국내에서 기업 경영이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행동주의 전략을 활용하는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기업에 주주환원 확대와 기업가치 제고 등을 요구하고 있으나, 재계에서는 이를 기업의 장기 성장을 저해하는 '경영권 간섭'으로 보고 경계하고 있다.
한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는 "기업은 사업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전제하에서 의사결정을 내리지만 행동주의의 투자 시계는 3∼5년 정도"라며 "그 안에서 수익률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을 취하다 보니 단기간에 무리한 요청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거버넌스 리서치업체 딜리전트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동안 한국에서 발생한 행동주의 캠페인의 타깃이 된 기업 수는 77개사로, 전년 대비 57% 늘어 미국(160개사), 일본(103개사)에 이어 전 세계에서 3번째로 많았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등 재계는 이를 놓고 행동주의 대응에 익숙하지 않은 기업이 펀드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지배구조개선 목소리 높이는 사모펀드…"가치 중립적으로 봐야"
사모펀드를 바라보는 기류가 바뀌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이다. 2022∼2023년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의 SM엔터테인먼트 캠페인은 대중에게 행동주의 전략을 각인시켰고, 바이아웃(경영권 인수)을 주로 하는 PEF 운용사 MBK파트너스는 기업 거버넌스(지배구조) 개선을 대외 명분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사모펀드에 대한 인식도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는 추세에 있다. 상장사 주가순자산비율(PBR) 평균이 1배 이하로 극도로 저평가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의 원인은 기업 경영과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을 소수 지배주주가 좌지우지하는 한국 특유의 의사결정구조에 있으며, 이 같은 관례를 개선시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사모펀드가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해외주식 투자가 늘면서 주주들의 의식 수준은 높아졌지만, 한국 증시에선 대기업 상장사의 기습적인 유상증자나 물적 분할, '쪼개기' 상장, 최대주주에 유리한 비율로 이뤄지는 계열사 합병, 지배권 유지를 위한 자사주 맞교환 등 일반주주들의 권리를 크게 훼손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를 겪은 개인투자자들 입장에선 공개적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기치로 내걸고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불사하는 사모펀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결사'로 등극한 셈이다.
일례로 싱가포르계 행동주의펀드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의 KT&G를 향한 캠페인 중 일부는 자본시장 일각에서도 평가가 엇갈렸지만, 적어도 최근 KT&G가 증권가에서 호평 일색인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발표하게 된 데엔 FCP의 영향도 적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관전평이다.
이상헌 아이엠증권 연구원은 "기업지배구조는 기업이라는 경제활동의 단위를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 간의 관계를 조정하는 메커니즘"이라며 "경영의 투명성 제고와 이사회 기능 정립, 투명한 소유 구조, 주주 권리 강화 등의 개선을 통해 기업가치와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주식시장에서 행동주의 투자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줄고 있는 가운데 (PEF 업계로) 막대한 투자자금이 유입됐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익을 창출할 기회가 적어지고 있다"며 행동주의를 전략으로 활용하는 PEF가 많아지고 있다고 짚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헤지펀드건 행동주의펀드건 사모펀드건 가치중립적으로 봐야 한다"며 "이들은 선을 행하는 것도, 악을 행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펀드여서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nor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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