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법재판소, 기후변화 심리 개시…98개국 의견 청취

입력 2024-12-0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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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법재판소, 기후변화 심리 개시…98개국 의견 청취
섬나라 바누아투, "선진국들에 법적 책임 있다" 주장
한국 대표단, 한국시간 4일 새벽 발언 예정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유엔 사법기관인 국제사법재판소(ICJ)가 2일(현지시간) 기후변화에 대해 국가들이 어떤 책임을 져야 마땅한지 따지는 공개심리를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법정에서 개시했다.
이번 공개심리를 거쳐 나올 ICJ의 '권고적 의견'(advisory opinion)은 법적 강제력은 없으나 국제법 해석에서 중요한 기준이 된다.
ICJ가 공개한 속기록에 따르면 이날 첫 발언자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 공화국의 기후변화 및 환경 특사 랄프 레겐바누였다.
그는 이번 재판 개최 요구에 앞장선 바누아투 공화국, 그리고 이 나라와 인근 섬나라 국가들의 연합기구인 '멜라네시아 스피어헤드 그룹'(MSG)을 대표해 나왔다.
레겐바누는 "과거와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 중 압도적 대부분은 쉽게 지목 가능한 소수의 국가들이 발생시킨 것인데도, 정작 큰 피해를 겪는 것은 나의 조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오늘날 우리(바누아투)는 우리 탓이 아닌 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다"며 태평양의 섬나라들이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과 재해로 생존의 위기에 처했다고 호소했다.



바누아투 검찰총장 아널드 킬 로프먼은 소수의 온실가스 다배출 국가들이 '행위(acts)와 부작위(omissions)를 통해' 국제법 위반 행위를 저질렀다며 이에 따른 국제법상의 국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누아투와 MSG의 수석 법률고문으로 나온 마르하레타 베베링커-싱은 '행위'의 예로 화석연료 채굴을 위한 허가서 발행,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을, '부작위'의 예로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과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따른 분담금을 지불하지 않는 것 등을 들었다.
베베링커-싱은 책임을 져야 할 국가들이 끼친 손해에 대해 완전한 배상을 해야 한다며 UNFCCC에 따른 현금 분담금에 더해 추가로 금전적 보상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개심리 첫날 발언한 국가들끼리 의견이 강하게 엇갈린 쟁점은 2015년 파리기후협약을 비롯한 UNFCCC의 틀 내로 국가들의 법적 책임이 한정되는지 여부였다.
바누아투를 비롯한 작은 섬나라들과 저위도 지역 저개발국들은 이를 넘어서는 배상과 보상을 요구했으나, 독일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자국의 법적 책임이 UNFCCC의 틀 내로 한정된다고 주장했다.
비프케 뤼케르트 독일 외무부 국제공법국장은 "파리기후협약 당사국들은 법적 강제력이 있는 조항과 그렇지 않은 정치적 약속 사이에 조심스러운 균형을 맞춰놨다"며 이런 구분을 깨뜨릴 경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정치적 과정들에 참여하려는 국가들의 의지에 심각한 위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카리브해와 대서양을 낀 섬나라 앤티가바부다를 대표해 발언한 재커리 필립스 변호사는 과거와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국가들의 법적 책임이 UNFCCC 틀 내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의무를 포함한 국제관습법을 준수하려면 파리기후협약이 "필요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ICJ 재판부는 13일까지 공개심리를 열어 총 98개국 대표들의 진술을 들을 예정이다.
국가들뿐만 아니라 석유수출국기구(OPEC),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등도 재판부로부터 발언 기회를 받았다.
대부분의 나라와 단체는 각각 30분간 발언한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과거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영국과 러시아, 현재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 등을 포함한 세계 주요국 대다수가 대표단을 보냈다.
한국 대표단은 3일 오후(한국시간 4일 새벽)에 발언할 예정이다. ICJ 공지에 따르면 대표단에는 황준식 외교부 국제법률국장, 이근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포함됐다.
ICJ는 이번 공개심리를 바탕으로 내년에 권고적 의견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ICJ 심리는 작년 3월 유엔 총회가 만장일치로 낸 결의안에 따른 것이다.
당시 총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국가들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또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을 경우 어떤 법적 결과가 따를 수 있는지에 관해 ICJ가 권고적 의견을 내도록 요청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남태평양대학교(USP) 법대 학생들이 2019년 시작한 캠페인과 바누아투 정부가 앞장선 외교적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2011년에도 팔라우를 중심으로 이런 ICJ 재판을 요구하는 운동이 있었으나 실패로 끝났다.
이번 ICJ 재판은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UNFCCC 당사국총회(COP29)가 지난주에 폐막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열렸다.
COP29에서는 과거에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했던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2035년까지 연간 3천억 달러(420조 원)의 분담금을 내놓겠다는 합의가 이뤄졌으나, 개발도상국들은 이에 대해 형편없이 부족한 액수라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solatid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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