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의사 출신 아사드, 반군 들이닥치자 수도 탈출…현재 행방 묘연
3차례 쿠데타 끝 하페즈 1970년 집권…차남 아사드, 2000년 권력 승계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7일(현지시간) 시리아 반군이 다마스쿠스를 함락시킴에 따라 반세기가 넘는 알아사드 일가의 철권 통치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하페즈와 바샤르 알아사드 부자는 1970년부터 지금까지 54년간 시리아에서 2대에 걸쳐 최고권력을 독점해 왔다.
이 일가가 '알아사드'라는 성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27년으로, 바샤르 알아사드의 친할아버지인 알리(1875∼1963)가 '알와히시'이던 성을 바꾸면서부터다.
'알아사드'는 아랍어로 '사자'라는 뜻이다.
알리 알아사드의 아들 하페즈(1930∼2000)는 1963년 바트당이 일으킨 쿠데타에 가담해 시리아 공군사령관 자리를 차지하면서 시리아의 권력 중심부에 등장했다.
그는 1966년에 2차 쿠데타에도 참가해 바트당의 기존 인사들을 대거 몰아내고 국방장관 자리를 꿰어찼으며, 1970년 11월에는 스스로 수괴 역할을 해 3차 쿠데타를 성공시켰다.
처음에는 허수아비 대통령 권한대행을 세워 놓고 본인은 국무총리라는 명목으로 집권했다가, 1971년 4월에는 대통령에 직접 취임했다.
하페즈는 당초 동생인 리파트(1937∼)를 후계자로 지목하고 부통령직까지 맡겼으나, 리파트는 1984년에 쿠데타로 형을 몰아내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다만 리파트는 명목상 부통령 직위를 1998년에 박탈당할 때까지 유지했다.
하페즈는 이어 장남인 바셀(1962∼1994)을 후계자로 지목했으나, 바셀은 1994년 자동차 사고로 숨졌다.
그러자 하페즈는 런던에서 안과의사로 일하고 있던 차남 바샤르(1965∼)를 불러들여 후계자로 삼았으며 1998년에는 시리아군의 레바논 점령작전을 맡겼다.
바샤르는 2000년 아버지가 죽은 후 대통령이 돼 철권통치 기구를 물려받아 24년에 걸쳐 집권했다.
바샤르의 동생인 마헤르(1967∼)는 '공화국 수비대'라는 이름을 지닌 대통령 친위부대의 사령관을 맡아 형의 철권통치를 보좌했다.
이들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경제나 국가 근대화에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럴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알아사드 일가는 2011년 '아랍의 봄' 사태와 맞물려 발발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한 후 내전이 시작되자 고문과 독가스 사용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자국민을 탄압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와 이란,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세력 헤즈볼라 등의 도움도 받았다.
그간 바샤르의 부인인 영국 태생 아스마(1975∼)를 비롯한 가족과 일가친척은 시리아의 비즈니스, 은행업, 통신업, 부동산업, 해양산업을 장악해 부귀영화를 누렸다.
영부인 아스마 알아사드와 자녀 3명은 일찌감치 시리아에서 도주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행방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말에 러시아로 건너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사드의 처남 또는 매부 3명이 아랍에미리트(UAE)로 도주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54년에 걸친 이 집안의 철권통치가 막을 내리면서 수도 다마스쿠스를 비롯한 시리아 전역에서는 환호와 함께 아사드 일가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
대통령이었던 바샤르 알아사드는 당초 7일 오후 8시에 대국민 연설을 한다고 예고했으나 실제로 하지는 않았다.
그는 8일 이른 시간에 다마스쿠스를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며칠간 그는 측근들이 도주해버려 고립된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시리아 총리는
시리아의 전직 고위 외교관인 바삼 바라반디는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바샤르의 이너서클이 자취를 감추고 거주지도 변경하고 휴대전화도 바꿨다"며 이들이 다른 사람과의 연락을 아예 끊어버린 상태라고 말했다.
다마스쿠스가 반군에 점령된 8일 환호하는 시민들은 시내 자라마나 구역에 있는 바샤르 알아사드의 부친 하페즈 알아사드의 동상을 넘어뜨리고 짓밟았으며, 이런 장면은 소셜 미디어와 방송을 통해 전세계에 전파됐다.
전날 밤 홈스 등 다른 도시에서는 이와 비슷한 사건이 이미 벌어졌다.
중동문제 전문가인 나타샤 홀 전략국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이날 BBC 라디오 5 라이브에 출연해 "54년 폭정이 몇 분 아니면 몇 시간 안에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 전개가 여러 사건들이 겹친 결과라며, 그 중에는 아사드를 지원해 오던 이란과 러시아가 세계 다른 지역의 사건들로 약화되고 역량이 분산됐다는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시리아 인구의 90%가 빈곤선 미만의 생활을 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재민캠프에서 살고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limhwasop@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