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소추 사태 속 韓민주주의·법치 정상작동 판단…동맹관리모드로 전환
한국 리더십 공백에 '美우선' 트럼프로 美 정권교체…동맹외교 전망 불투명
(워싱턴=연합뉴스) 강병철 특파원 =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런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비(非)외교적 언어까지 사용하면서 우려를 표명했던 미국 정부가 19일(현지시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 아래에서 고위급 대면 외교 재가동 방침을 밝혔다.
윤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 소추에 대해 법적으로 다투겠다고 밝히는 등 한국의 '계엄 사태'가 민주주의와 법치에 따른 질서 있는 해결 수순으로 들어가자 대(對)한국 외교의 정상화에 나서는 모습이다.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은 이날 워싱턴DC의 외신센터에서 진행한 아태 지역 언론 간담회에서 내년 1월 20일 2기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전 '적절한 시기(in due course)'에 한미간 고위급 대면 회담을 하겠다고 밝혔다.
국무부 2인자인 캠벨 부장관의 이런 언급은 계엄 사태 때 미국 정부의 스탠스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 3일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중대 우려(grave concern)'라는 표현을 사용한 공식 입장을 내고 사실상 이를 비판했다.
또 한국 국회가 계엄 해제를 결의하자 윤 대통령이 이를 수용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특히 캠벨 부장관은 지난 4일 윤 대통령의 계엄선포에 대해 "심한 오판"이라고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간접 화법을 통해 '매우 불법적(deeply illegitimate)', '매우 문제적(deeply problematic)'이라는 말을 거론하는 등 외교적으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까지 쓰기도 했다.
당시 이런 반응은 미국 주도의 민주주의 정상회의까지 공동 개최했던 핵심 동맹국인 한국에서, 이른바 '아메리칸 파이' 노래를 불렀던 주인공인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것에 대한 미국 정부의 '충격'을 반영했다는 것이 워싱턴 외교가의 평가다.
미국 조야가 받은 이런 '충격파'는 한미간 고위급 외교의 차질로 이어졌다.
당장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은 한국과 일본 양국을 순방하려고 했으나 한국 방문은 직전에 순연했다.
국방부는 지난 5일 오스틴 장관의 일본 방문을 발표하면서 한국은 같이 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나아가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도 북핵 및 인도·태평양 협력 문제에 대한 한미일 3국 회의 등을 위해 최근 일본을 찾았으나 한국은 별도로 방문하지 않았다.
대신 한국 외교부 당국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회의에 참석했다.
미국 정부는 계엄 사태 와중에 고위급 인사들이 한국을 방문해 카운터파트와 만날 경우에 정치적으로 오해를 받거나 정쟁에 이용될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해 계획을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차원에서 미국 국무부가 이날 고위급 대면 외교를 재가동하겠다고 밝힌 데는 한미 동맹의 기반인 민주주의와 법치가 한국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한국 내 정치적 혼란은 계속되고 있지만, 이런 혼란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소되는 절차에 들어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전날 외신 브리핑에서 "폭넓게 얘기하자면 우리는 지난 몇 주간 헌법 절차가 취지대로 작동하는 것을 목격했다"면서 "윤 대통령이 (계엄령 선포라는) 행동을 취하자 의회가 탄핵으로 대응했고,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들어섰다. 민주주의 제도는 그렇게 작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한 권한대행 개인에 대한 신뢰도 미국 정부의 판단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캠벨 부장관은 한 권한대행이 과거 주미대사로도 재직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그의 과도적(interim) 역할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도 지난 16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한 권한대행을 '안정성의 원천'(source of stability)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엄청 정치적이지 않으며 진정한 기술관료(technocrat)"라고 말하면서 뒤 한 권한대행이 현 정국에서 관리자로서는 적임이라고도 평가했다.
이와 관련,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5일 한 권한대행과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시스템 작동이라는 인식에 더해 동맹으로서의 한국의 중요성도 미국 정부가 다시 고위급 대면 외교를 재개하는 이유로 꼽힌다.
유일한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이 일본과 함께 핵심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과의 동맹 관계를 계속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나아가 탄핵소추 사태로 한국에서의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망도 미국의 스탠스 변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외교 기조가 바뀔 수 있는 만큼 조기에 밀착 대응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어 보인다.
이와 관련, 캠벨 부장관은 "우리는 과도 정부(권한대행 체제의 한국 정부)뿐 아니라 위기의 다른 행위자들과도 가능한 모든 소통 채널을 열어두고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현재 집권중인 바이든 정부의 이런 기조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리더십이 실질적으로는 공백 상태인 데다 미국 역시 정권 교체기에 있다는 점에서 향후 한미간 동맹 외교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단정짓기 어려운 상황이다.
바이든 정부와 달리 내년 1월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동맹보다는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고 있으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향해 수시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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