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호적인 대외환경 조성·영향력 키우려 시진핑 집권 후 강화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영국에서 찰스 3세 국왕의 동생인 앤드루 왕자가 간첩 혐의를 받는 중국인과 가까이 지낸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커지는 가운데 중국공산당 중앙통일전선공작부(이하 통일전선부)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과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더타임스 등은 앤드루 왕자와 친분이 있던 중국인 사업가 양텅보(50)의 간첩 의혹과 관련해 당내 통일전선부가 마오쩌둥·시진핑 등 중국 지도자들로부터 '마법의 무기'로 불렸다면서 이를 집중 조명했다.
통일전선(United Front)은 공산주의 세력이 혁명 단계에서 국내외 주요 세력과 연대해 공동의 적에 맞서는 전술 개념이다.
주로 자력으로 적을 물리치기 어렵거나 시기가 성숙하지 않을 때 우호세력을 확보하고 적을 안에서부터 약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중국에서는 항일전쟁 과정에서 공산당이 국민당과 연대한 국공합작이 대표적 사례다.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초대 중국 국가주석은 1939년 통일전선을 무력투쟁, 당 건설과 함께 "중국 공산당이 혁명에서 적을 물리친 3대 법보(法寶)"라고 말한 바 있다. 법보란 도교 세계관에서 요괴나 마귀를 제압할 수 있는 신묘한 무기를 뜻한다.
이러한 통일전선 전술은 공산당이 1949년 신중국을 건국하고 대륙을 통치하기 시작한 뒤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으나,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미중 전략경쟁이 치열해지자 대외적으로 중국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수단으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시 주석은 2017년 통일전선이 "공산당의 승리를 위한 중요한 법보로 장기적으로 지속돼야 한다"고 말하는 등 통일전선을 강화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분석가들은 '시진핑 시대 통일전선' 활동에서 선전전, 대만·티베트 등 민감한 문제에서 유리한 여론 조성, 정치인이나 언론인 등 유력인사들과의 친분을 이용한 영향력 행사 등이 두드러진다고 말한다.
중국공산당 통일전선부는 이러한 통일전선 전술을 총괄하는 핵심 조직이다. 통일전선부 수장은 당 중앙서기처 서기·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을 겸임하고 있는 스타이펑이나 통일전선 전략의 총책임자는 이데올로기와 선전을 책임지는 당 서열 4위 왕후닝 정협 주석이다.
더타임스는 통일전선부가 "영향력 작전과 정보 수집 활동을 혼합한 형태로, 어떤 면에서는 중국의 소프트파워 부족을 보완하려 한다"며 "궁극적 목적은 세계 정치 환경을 중국에 유리하게 조성하고 다른 나라 정책에 영향을 미치며, 선진 외국기술에 접근하고, 중국에 비판적인 모든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BBC는 통일전선부가 "웹사이트도 있고 여러 활동을 공개하는 등 겉으로 보기에는 그림자 조직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 업무와 범위는 명확하지 않다"고 전했다.
통일전선부는 특히 해외 언론의 중국 관련 내러티브에 영향을 미치고 외국에서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세력을 겨냥하고자 양씨처럼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을 포섭하고 있다.
다양한 해외 중국인 커뮤니티 조직을 통해 국외에서 중국 공산당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공산당에 반대하는 예술작품을 검열하거나,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활동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식이다.
오드리 웡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정치학 조교수는 "통일전선부의 업무에는 간첩 활동이 포함될 수 있지만, 그보다 광범위하다"며 "통일전선 활동은 외국 정부로부터 비밀 정보를 입수하는 것을 넘어 해외 거주 중국인들의 광범위한 동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전선부의 활동은 불법이라거나 간첩 활동이라고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모호함이 특징이다. 그 업무 가운데에는 당내 다른 조직과 겹치는 부분이 많으며, 국외에서 성공한 중국인들이 여러 유력인사와 교류하는 것 자체는 드문 일이 아니다.
이는 외부에서 볼 때 중국이 통일전선부 업무가 간첩 활동이 아니라고 "그럴듯하게 부인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으로, 더 큰 의심과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라고 BBC는 지적했다.
양씨 역시 자신은 불법적인 일을 한 적이 없으며 스파이 혐의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1974년 중국 윈난성 출신으로 1995년 윈난대를 졸업하고 국가기관에서 7년간 근무하다 2002년 영국으로 유학 와 요크대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영국에서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고 영국·중국 비즈니스 협회 회장을 맡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
호펑 헝 존스홉킨스대 정치학 교수는 중국의 통일전선 작업에 대해 "영향력 확대와 스파이 활동 사이에서 경계가 모호하다"면서 "서방 정부는 중국의 통일전선 작업에 대해 더는 순진하게 생각하지 말고 국가안보뿐 아니라 다수 중국계 시민들의 안전과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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