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재 청년희망재단 이사장 인터뷰
‘100대 1’ 넘는 대기업 입사 경쟁률 뚫는 건 실력 아닌 기적
유능한 인재의 미래를 운에 맡기는 것은 국가적 낭비
언젠가는 모두 창업을 해야 하는 시대
중소기업 경험이 창업의 좋은 자산이 될 것
CES 4000개 참여기업 중 20%가 창업 5년 이내 신생기업
대부분 중국 스타트업 회사들, 한국은 10여 년째 똑같은 대기업만 참석
[PROFILE]
박희재
2016년 청년희망재단 이사장(현)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 단장
1998년 에스엔유프리시젼 창업
1993년 서울대 공과대학 기계항공공학부 교수(현)
1990년 맨체스터공대 기계공학 박사
[캠퍼스 잡앤조이=이도희 기자] ‘산학협력’. 서울대 공대 교수이자 벤처 CEO 출신의 박희재 청년희망재단 이사장이 현재 가장 역점을 두는 부분이다. 그는 “산학협력이야말로 ‘국가 경쟁력 확보’와 ‘청년 취업난 해결’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해결책”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규제완화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청년희망재단 이사장 취임 후 1년이 조금 지났다. 그간 특히 역점을 둔 부분은.
미스매칭 해결이다. 신규 일자리 창출보다 기존의 구인처와 구직자를 연결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재단의 핵심사업인 ‘온리원 채용박람회’는 하루 종일 한 기업의 인사담당자와 구직자가 면접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프로그램이다. 서류전형이 없기 때문에 스펙이 아닌 대화로 상대방의 진가를 파악할 수 있다. 요즘 취준생은 서류 한 줄에 목숨을 걸지만 이들 서류는 대부분 ‘광탈’ 대상이다. 직접 만나야 한다. 특히 참여기업에 중소기업이 많은데 중소기업은 취업 포털사이트에서 좋은 인재를 찾기 어렵다. 그래서 알음알음 뽑는 게 관행이 됐는데 이런 점을 개선하고자 한다.
미스매칭의 원인은 무엇인가.
정보부족이다. 대학생들이 졸업 전 현장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학교 수업도 실무와 차이가 있다. 이걸 우리나라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대학이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프레임에 너무 갇혀있다. 그래서 취업도 입시처럼 학점 잘 받고 시험 잘 보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언론의 책임도 있다. 일자리의 90%는 중소기업에서 나온다. 중소기업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큰 축이다. 그런데 언론부터 중소기업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 ‘100대 1’이라는 대기업의 입사경쟁률은 사실 실력이 아닌 기적으로밖에 뚫을 수 없다. 유능한 인재가 미래를 이런 운에 맡기는 것은 국가로서도 큰 낭비다. 엘리트일수록 중소기업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발전하려고 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얼마 전 ‘중소기업을 꺼리는 이유’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1위로 임금격차가 꼽혔다. 임금격차 문제가 우선 해결돼야 하는데.
물론 기업의 규모에 따라 임금 차이는 있다. 정부가 해결해주면 된다. 격차만큼 인센티브를 지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기업 못지않게 임금을 주는 중소기업도 구인난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중 하나가 선입견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 모두 언젠가는 창업을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중소기업에서의 경험이 창업의 좋은 자산이 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청년 취업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일자리를 만드는 주체는 기업인데 경기가 좋지 않으니 도리가 없다. 게다가 중국과 동남아까지 부상하면서 국내 기업이 경쟁력을 잃었다. 이제 다른 차별화된 역량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산학협력’에 매우 공을 들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 특히 중소기업에 가장 필요한 것은 기술력과 글로벌역량이다. 답은 청년이 가지고 있다. 기술습득이 빠르고 글로벌 마인드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키우는 게 바로 대학이다. 이게 산학협력의 핵심이다. 그러면 삼중의 효과가 있다. 학생은 실무를 배우고 중소기업에는 젊은 인력이 유입되며 국가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산학협력의 성공사례로 종종 꼽는 예가 에스토니아다. 동유럽의 아주 작은 나라인데 유능한 젊은이가 많고 유럽 강국이 앞 다퉈 스핀 오프(Spin-Off)할 만큼 유럽의 창업시장에서 영향력이 상당하다.
이사장님 역시 벤처 CEO출신이다. 1998년 서울대 1호 학내벤처 ‘에스엔유프리시젼’을 설립해 매출 1000억 원대까지 키웠다. 창업 계기는.
기분이 나빴다.(웃음) IMF사태가 터지면서 1달러가 2000원까지 치솟는 걸 보고 서울대 공대교수로서 책임을 느꼈다. 공학은 현장과 뗄 수 없기 때문에 내 기술을 상품화해 1달러라도 벌어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창업이 친숙하기도 했다. 영국은 세 사람만 모이면 회사를 만든다.
문제는 국내에 산적한 규제법들이었다. 대학교수는 사적이익을 취할 수 없고 학교 사무실 역시 사업자등록 대상이 아니었다. 말도 안되는 규제다. 청와대부터 국무총리실, 교육부 등 유관기관을 1년 반 쫓아다닌 끝에 ‘벤처기업특별법’에 이를 허용하는 문구를 한 줄 넣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국가안보나 보위에 영향을 미치는 것 말고는 다 풀어야 한다. 아예 규제특구지역을 설정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법 때문에 우왕좌왕하는 사이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지난 달, ‘한국대학대표단’ 자격으로 중국 선전을 다녀왔다. 중국 창업 열기는 어떠한가.
선전의 창업특구에 다녀왔는데 ‘텐센트’나 ‘바이두’ 같은 유니콘 기업 외에 2~3진 기업도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다. ‘잉단’이라는 액셀러레이터도 인상 깊었다. 2만 여개의 제휴사를 보유해 아이디어만 가져가면 바로 상품화해 준다.
무엇보다 중국의 창업시장에는 인재가 넘쳐 난다. 한 예로, 선전의 초박형 플렉시플 디스플레이 개발업체인 로욜(ROYOLE)은 2년 만에 1조원의 기업 가치를 달성했는데 CEO가 29세로, 중국에서 최단기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IBM에서 근무한 엘리트다. 요즘 중국인들은 기본적으로 돌아다니는 돈에 매우 관심이 많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손해 보는 느낌이랄까.
우리나라는 지금이라도 정부가 손을 떼면 창업 시장이 바로 멈출지 모른다. 중국은 이 단계를 넘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 초 미국 라스베가스 CES쇼에 방문했다. 4000개 참여기업 중 20%가 창업 5년 이내의 신생기업이었는데 대부분 중국 회사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10여 년째 대기업만 참석하고 있다. 안타깝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청년 CEO가 많아지고 있다. 창업 선배로서 조언을 해준다면.
맞다. 그래도 이전보다 창업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 20~30대 젊은 친구들이 매우 지혜롭고 준비도 착실히 잘 해놨더라. 여기에 세 가지만 덧붙여 조언하고 싶다. 우선 글로벌 역량이 필요하다. 아이템 구상 단계부터 해외시장을 염두에 둬야 한다. 비즈니스 관행도 잘 알아야 한다. 돈과 법에는 매우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기 때문에 경험자의 컨설팅이 정말 중요하다. 계약서의 한두 개 독소조항으로 피해를 보는 사례도 많다. 절대 혼자 결정하지 말고 법률사무소나 대학, 지자체의 창업지원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세 번째로, 돈은 번만큼만 써야 한다. 고정적 캐시플로우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할 것 같다. 새 정부 출범 후 재단의 거취에도 변화가 있나.
청년희망재단은 민간재단이다. 기부금은 국민이 특정 정권이 아닌 국가를 위해 쓰라고 만들어준 것이다. 게다가 ‘청년 취업’, ‘기업가 정신 고양’ 등 재단의 핵심 운영 목표는 정권과 상관없이 매우 중요한 문제다. 정부와 협력해 시너지효과를 내는 데 집중하겠다.
대담=장승규 편집장
정리=이도희 기자
사진=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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