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클럽도 동창회도 아닌, 세상에 없던 커뮤니티 ‘구공백말띠’

입력 2017-09-29 09:48   수정 2017-10-02 09:49


[꼴Q열전] 

[캠퍼스 잡앤조이=박해나 기자]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생판 모르는 이들이 모였다. 초면임에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말을 놓고,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한다. 이 대책 없이 해맑은 우정의 필요충분조건은 오직 하나다. ‘백말띠’해에 태어난 1990년생이라는 것.



△ 구공백말띠 운영자 김건우(28) 씨와 촬영을 위해 말(?)이 되어 준 후배 주영태(26) 씨 (사진 = 이승재 기자)


남녀 성비가 116.5명(여아 100명당 남아 수 116.5명)으로 나타난 1990년은 성비 불균형이 최고치를 기록한 해다. 이유는 간단하다. 1990년이 60년 만에 돌아오는 ‘백말띠’의 해였기 때문이다.

 

“‘백말띠는 팔자가 드세다’는 속설이 있어요. 그래서 1990년에 여아 낙태율이 가장 높았다는 통계도 있죠. 학창 시절에는 조금만 나서서 뭔가를 하려 하면 어른들이 ‘백말띠라 성격이 적극적이다’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여학생의 경우 드센 성격을 눌러야 한다며 야단도 많이 맞았죠.” 

1990년생 김건우(28) 씨는 기죽어 사는 구공백말띠가 드센 성격(?)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페이스북 페이지 ‘구공백말띠’다. 지난 2014년 말띠해를 기념해 만든 이 커뮤니티에서 1990년생 동갑내기들은 어제를 추억하고, 오늘을 응원하고, 내일을 준비한다. 



△ (사진 = 구공백말띠 제공)

팔자 드센 구공백말띠, 모여라!   




“군대 전역 후 ‘뭐 재미있는 것 없을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가만 보니 다가오는 새해(2014년)가 12년 만에 돌아오는 말띠해더라고요. 백말띠인 우리의 해이기도 했죠. 그래서 ‘1990년생이 모여 즐거운 파티를 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곧바로 커뮤니티를 만들고, 신년 파티를 기획했죠.” 

커뮤니티의 이름은 1990년생이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백말띠’를 강조해 ‘구공백말띠’로 정했다. 페이지에는 동갑내기들이 그리워할 추억 혹은 또래가 공감할 고민 등의 콘텐츠를 하루 한 개씩 올리기로 했다. 그렇게 처음 올린 게시물이 바로 ‘피카추 돈까스’다. 학교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기름진 맛으로 입안 가득 환희를 안겨주던 300원의 행복! 

비슷한 추억을 가진 또래들이 공감할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대단했다. 게시물의 ‘좋아요’ 숫자는 10만 이상을 기록했고, 페이지 개설 2주 만에 1만4000명이 ‘구공백말띠’를 팔로워했다. 더불어 그가 기획한 신년 파티도 1990년생 2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현재 ‘구공백말띠’ 페이지 팔로워 숫자는 약 5만5000명이에요. 한 번도 SNS에서 광고비를 내고 페이지를 알린 적도 없는데 모두 알음알음 찾아오더라고요. 저희 커뮤니티가 잘되는 것을 보고, 다른 나이대 분들도 동갑내기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한 걸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구공백말띠’만큼은 단합이 되지 않는다더라고요.” 



△ (사진 = 구공백말띠 제공) 


‘동갑내기’라는 이유로 전국에서 모여 운동회 개최




구공백말띠가 주목받는 것은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단합이 잘되기 때문이다. 특히 화제가 된 것은 1년에 한 번 열리는 ‘하얀말 운동회’.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오직 ‘1990년생’이라는 이유 하나로 한자리에 모여 운동회를 연다. 지난해에는 300명, 올해는 500명이 모였다. 운동회 참가자는 선착순으로 모집하는데, 모집을 시작한 지 단 3시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열기가 대단하다.  

“‘하얀말 운동회’는 구공백말띠의 대표 프로젝트예요. 전국 각지에서 흰색 운동복을 입고 모여 파도타기부터 공굴리기, 6인 7각 등의 경기를 하죠. 운동회가 끝난 뒤에는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 유행하던 음악을 틀어놓고 함께 춤추며 운동장 클럽을 열기도 합니다.” 

운동회는 김 씨와 운영진, 스태프가 모여 준비한다. 사진, 영상, 디자인 등 각자의 능력을 살려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운영진 역시 1990년생 동갑내기다. 이들은 구공백말띠 커뮤니티에 대한 애정 하나로 흔쾌히 재능 기부를 자청했다. 운영진이 아닌 일반 참가자의 열정도 대단하다. 보통 운동회 같은 프로젝트는 참가자들의 참가비(운동회 1인 2만5000원)로 운영되는데, 실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구공백말띠 동갑내기들은 너나없이 나서서 각자의 방식대로 도움을 주고 있다. 

“회사에서 근무하는 친구들은 홍보 팀, 상사에게 ‘이런 행사가 있다’고 설명하고 협찬, 후원 등을 부탁했어요. 덕분에 도시락과 물 등을 협찬받았죠. 전자레인지, 수세미같이 운영진에게 필요한 물품을 개인적으로 보내주는 친구도 많아요. 농사일을 하는 한 친구는 운동회를 돕기 위해 산에서 직접 트럭을 몰고 와 도움을 주기도 했죠.”



△ (사진 = 구공백말띠 제공) 


친구들아, 환갑잔치도 함께 하자! 




운동회 말고도 구공백말띠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지난 5월에는 ‘하얀말 수련회’를 다녀왔다. 중학교 수련회를 콘셉트로 해 조교를 선발하고, 신청자에게는 가정통신문을 돌려 부모님의 연락처와 사인을 받도록 했다. 수련회장에 모여서는 담배와 술을 소지한 불량학생(?)을 적발하고, 밤에는 장기자랑과 캠프파이어를 진행하는 등 그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는 즐거운 이벤트였다. 특히 가정통신문에 있는 부모님의 연락처를 통해 미리 자녀에게 보내는 편지를 받아, 눈물 콧물 쏙 빼는 캠프파이어를 완성했다는 후문이다. 

1990년생의 고민을 모아 국회의원에게 전달한 ‘하얀말의 회초리’라는 프로젝트도 큰 주목을 받았다. 김 씨에게 개인적으로 고민을 보낸 동갑내기의 이야기를 모아 국회의원에게 전달하고,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 각 정당의 대표 국회의원을 초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 (사진 = 구공백말띠 제공) 


이외에도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씨를 초대해 함께 종이접기 교실을 열기도 했고, 봉사 활동, 에코 프로젝트 등도 진행했다. 지방에 살고 있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힘든 이들을 직접 만나러 지방으로 떠나는 ‘하얀말이 간다’도 인기였다. 부산에서 만나 연인이 되어 내년에 결혼을 앞둔 친구도 있다. 사회는 특별히 김 씨가 봐주기로 했다. 

“구공백말띠는 세상에 없던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로터리클럽도 아니고, 동창회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적 기업도 아니죠. 지금은 구공백말띠에서 수익을 내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 일하는 운영진, 스태프가 각자의 돈을 쓰지 않고도 프로젝트를 진행할 정도는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 부분을 고민하고 있어요. 저도 올해 대학을 졸업하는 만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하고요. 하지만 구공백말띠는 계속 함께할 거예요. 운동회에서 보여준 마음만 변치 않는다면, 함께 모여 환갑잔치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phn09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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